역사적 이야기

안전망 없이 일하는 시대, 정규직 고용은 20세기의 유산이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유럽 전역에서 정규직 고용 계약의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프리랜서, 기간제 계약, 수시 호출(on-call)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서유럽의 노사관계가 점차 세계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와 닮아가고 있다. "정규직 고용과 그에 딸린 각종 혜택은 어디까지나 20세기의 산물이었다."

현재 네덜란드와 서유럽 노동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규정할 용어조차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사연구소(IISH)와 왕립네덜란드예술과학원(KNAW)이 지난 1월 14일 개최한 미니 심포지엄 '안전 없이 일하기(Working without Security)'에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사회학자 에이브럼 데 스반(Abram de Swaan, 암스테르담대), 얀 브레만(Jan Breman, 암스테르담대), 그리고 IISH의 역사학자 마르셀 반 더 린덴(Marcel van der Linden)은 네덜란드와 서유럽 노동시장에서 거대한 역사적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노동시장은 '비공식화(informalization)'되고 있으며, '불안정화(prekarization)'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정규직 계약이 사라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질병 시 유급 보장과 연금 적립 같은 안전장치도 함께 증발한다. 새롭게 채용되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구식 특권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흔히 '사업자'라 불리는 무직원 자영업자로, 전직 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정확히 같은 일을 하지만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일한다. 고용주는 더 이상 장애보험이나 연금을 제공하지 않으며, 그것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계약된 업무가 끝나면 언제든 거리로 내몰릴 수 있다.

"위험한 세계적 추세"라고 데 스반은 진단한다. 확실성의 상실은 특히 전통적으로 경제 기반이 취약한 남유럽에서 소수자 혐오와 청년 실업 폭증으로 이어진다. 그리스 신나치 정당 '황금새벽(Golden Dawn)'의 득세를 예로 들며 그는 "극단주의 활동으로 쉽게 유혹될 수 있는 '잃어버린 세대'"라고 경고한다. "노동과 자본 사이에 불평등한 기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자본은 전 세계를 누비며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곳에는 한동안 일자리가 생기지만, 아무도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다른 곳에서 수익률이 더 높아지면 일자리는 그만큼 빠르게 사라집니다."

동료에서 경쟁자로

"특히 아시아에서는 역사상 선례가 없는 인구 대이동이 진행 중입니다." 인도와 중국 등에서 수십 년간 연구를 이어온 사회학자 얀 브레만의 말이다. "새로운 공장의 취업 기회를 찾아 과밀해진 농촌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임시 서비스를 제공하던 노동자들로 구성된 비공식 경제는 처음에는 일종의 '대기실'이었다. 안정적 고용을 제공하는 공장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장이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대기실은 결국 영구화되었다. 현재 아시아 이주민 중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는 불확실한 비공식 경제 속에 깊이 갇혀 버렸다.

물론 서유럽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일종의 '형식화된 불확실성' 속에서 일하는 늘어나는 프리랜서 군단에서는 분명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브레만은 "비공식 경제는 원래 아시아에 있었지만, 지금은 서구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비공식화는 노동자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듭니다. 예전에는 동료였던 이들이 이제는 같은 일감을 두고 경쟁자가 됩니다. 이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사회 문제'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이며, 노조는 무력한 실정입니다"라고 지적한다.

"2004년 이탈리아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새로운 성인을 탄생시켰습니다. 바로 산 프레카리오(San Precario), 보호받지 못하는 모든 노동자의 수호성인입니다." 사회운동사 교수 마르셀 반 더 린덴은 강연을 이렇게 시작했다. 산 프레카리오는 유럽 노동시장에 만연한 불확실성의 상징이다. "유연 노동 자체는 수세기 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떠돌이 노동자는 가정 노예보다 낮은 지위를 받았습니다. 평생직장이라 부를 수 있는 표준적 일자리, 즉 모든 사회보험을 갖춘 일자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등장했습니다. 그것은 남편 한 사람의 월급으로 가족을 부양한다는 '남성 가장' 규범과 동시에 생겨났고, 임시 노동은 집 밖에서 가끔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몫으로 여겨졌습니다."

역사적 예외

그렇다면 2차 대전 후 확충된 서유럽의 사회 시스템은 단 한 세대, 즉 '베이비부머' 세대만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짧은 역사적 예외였던 것일까? 반 더 린덴은 "정규직 고용 계약과 그에 딸린 모든 혜택은 실제로 20세기의 산물이 맞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만델(Ernst Mandel)은 이미 1960년대에 모든 이에게 정규직 계약을 제공하는 체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예측했습니다. 그것은 저렴한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붕괴는 첫 번째 위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했죠. 실제로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세계의 아주 좁은 일부에서 아주 짧은 기간만 지속된 역사적 현상이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사회보장 체계의 구축과, 한 사람의 급여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남성 가장의 이념입니다." 반 더 린덴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왜 하필 그 시기에, 왜 특히 유럽에서 이것이 생겨났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직 없습니다. 대기업들은 전문 지식을 갖춘 핵심 인력을 정규직 계약과 연금기금으로 붙잡아 둘 이해관계가 있었고, 그런 관행은 전쟁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왜 모든 사람에게 정규직 계약이 표준이 되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입니다."

정규직 계약의 소멸과 경제의 비공식화는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다. 반 더 린덴은 "모든 것은 1991년 소련의 붕괴에서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서구의 사회보장은 공산주의에 대한 대항마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안정을 제공하는 데 공산주의는 전혀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죠.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며 이 논거는 힘을 잃었고, 현재의 경제 위기는 붕괴를 한층 가속화했습니다."

반 더 린덴은 표준으로서의 정규직 고용 계약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비공식화는 노조를 약화시켰고, 단체교섭은 정규직이 없는 노동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진 대변 방식이 되어버렸다. 당분간 서유럽은 특별했던 20세기를 제외하면 언제나 그래왔던 표준, 즉 큰 보장 없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