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이라는 퇴행성 근육 질환 진단과 함께 2년 남짓한 수명을 통보받는다. 그러나 그는 2년이 아니라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병과 싸우며, 완전히 마비된 몸으로도 학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18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었고, 영화 만물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은 이 감동적인 인생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다. 특히 쇠약해져 가는 호킹 역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시대의 아이콘, 스티븐 호킹
스티븐 호킹(1942~2018)은 어쩌면 현대에 가장 잘 알려진 과학자일 것이다. 한때 위트레흐트에서 열린 그의 강연은 단 1분 만에 매진되었다. 물리학에 대한 그의 기여가 혁신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든 데에는 무엇보다도 독특한 개인적 매력이 한몫했다. 반세기 동안 그는 근육 질환 ALS와 맞서 싸웠고, 이 질병은 전동 휠체어에 몸을 살짝 기울인 채 앉아 음성 합성 컴퓨터로 말하는, 그만의 상징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가족이 치른 대가, '희생'
영화 만물 이론을 통해 누구나 그의 특별한 인생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1960년대 초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창 시절부터의 호킹을 따라간다. 그곳에서 그의 재능은 금세 드러났고, 파티에서 처음 만난 제인에게 그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곧 운동 능력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 대학 캠퍼스 한복판에서 자기 발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치는 순간이 그것이다.
의사에게 ALS 진단과 함께 2년의 기대수명을 듣는 순간, 그의 세계는 일순간 붕괴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제인은 그와 함께 인생을 최대한 살아내자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며, 호킹은 과학 연구를 이어간다. 뛰어난 두뇌만큼은 병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킹은 놀랍게도 버텨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가족이 치러야 하는 점점 커지는 희생이 있었다.
사실에 충실한 정통 바이오픽
에디 레드메인이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는 호킹을 연기한 것이 놀라운 수준이라, 관객은 그의 비극적인 운명에 진심으로 마음을 울리게 된다. 레드메인은 ALS 환자 역할을 위해 무려 4개월간 준비했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그는 얼굴의 미세한 근육 경련 하나까지 물리학자 본인과 흡사하게 보인다. 제인 역의 펠리시티 존스 역시 탄탄한 연기를 선보여,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가족에게 마음을 쏟게 된다.
영화는 사실에 꽤 충실한 정통 바이오픽이다. 예컨대 호킹이 제인과의 첫 만남 다음 날 아침, 전날 밤 나눈 대화를 언급하는 의미로 그녀의 문 앞에 세제 한 묶음을 놓아두었던 일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다만 주요 예외가 있다면, 영화가 스티븐과 제인의 결혼 생활의 균열과 마무리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더 험난했던 부분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오랜 갈등이 이미 화해로 정리된 상태였기에 영화는 굳이 이를 소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은 적고, 사람의 이야기는 많다
만물 이론은 제목과 달리 물리학 영화가 아니다. 호킹이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이해하기 위해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제인이 스티븐이 왜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공식을 찾으려 하는지 설명해주는 장면이 잠깐 등장하고, 그의 뛰어난 박사 논문과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복사에 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 이른바 '호킹 복사'가 언급되긴 하지만, 관객이 크게 똑똑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적 내용이 부족한 점은 어떤 면에서 아쉽다. 그의 천재성의 실질적인 원천은 일반 대중이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도 물리학 팬들도 회심의 미소를 지을 거리는 충분하다. 로저 펜로즈, 킵 손과 같은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등장하고, 호킹이 킵 손과 벌였던 내기—시그누스 X-1이 블랙홀인지 아닌지를 두고 성인지 펜트하우스 구독권을 걸었던(호킹이 졌다)—일화도 나온다.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대중과학서 시간의 역사, 그리고 강연의 첫 문장으로 즐겨 던지던 호킹식 농담 '날 들을 수 있나요?'—답은 당연히 언제나 '네'다.
과학 자체에 대한 조명이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마시 감독이 물리학자라기 이전에 '인간 스티븐 호킹'과 그의 가족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 영화를 이토록 사로잡는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호킹 본인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만물 이론은 인상 깊고 감동적인 영화로, 호킹의 특별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끈기와 희망, 그리고 사랑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