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미디어 폭력과 선전: 16세기 암스테르담을 뒤흔든 여론 전쟁

80년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암스테르담에는 여전히 엄격한 가톨릭 시정부가 들어서 있던 시절, 그 도시에서는 활발한 공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여러 진영은 오늘날의 스핀 닥터를 연상시키는 미디어 전략을 동원해 시민들의 마음을 자신들 편으로 돌리려 했는데, 그 수준은 단순히 인쇄술을 활용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역사학자 펨커 딘(Femke Deen)의 박사 연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성상 파괴 폭동, 암스테르담을 뒤흔들다

1566년 여름, 성상 파괴 운동(아이코노클라즘)이 네덜란드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암스테르담 역사에서도 특히 격동적인 시기였습니다. 곳곳에서 개신교 반군이 가톨릭 교회에 뛰어들어 성모 마리아와 여러 성인의 상을 파괴했습니다. 개신교도들에게 우상 숭배는 참된 기독교 신앙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성상 파괴 운동의 거센 폭력 덕분에 개신교 세력은 자신들의 요구를 뚜렷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많은 네덜란드 도시가 종교 개혁가들, 곧 오라녜 공 빌럼이 이끄는 네덜란드 반란 쪽에 기울었지만, 엄격한 가톨릭 시의회가 집권하던 암스테르담은 달랐습니다.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빠르게 재정비되었고, 1578년에야 비로소 물러났습니다.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 즉 엄격한 가톨릭 시정부와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수많은 개신교도가 공존하던 시기에 활발한 공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역사학자 펨커 딘이 박사학위 논문 『무르담(Moorddam): 네덜란드 반란기 암스테르담의 공개 토론과 선전(1566~1578)』에서 집중 조명한 것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팸플릿과 노래로 벌인 선전 대결

시의회, 반군, 평범한 시민, 스페인 중앙 정부까지 모두 치열한 선전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팸플릿, 청원서, 노래 등 각종 대중 매체를 동원해 여론을 조작했습니다. 펨커 딘은 이들 집단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실제로 체계적인 미디어 전략을 구사했음을 보여줍니다. 기존 역사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지능적인 방식이었습니다.

16세기에도 지금처럼 미디어와 대중, 정치는 불가분하게 맞물려 있었습니다. 길거리와 선술집에서 오간 논쟁이 정치 의제를 크게 좌우하기도 했습니다. 딘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의 논쟁은 주로 도시 공동체의 단결과 공공의 이익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각 집단은 정교한 미디어 전략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그런 문제를 자신들이 잘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시키려 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시의회는 이윽고 난처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질서를 유지하려면 이단자, 즉 반항적인 개신교도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이 일상처럼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을 박해하는 정권이 대체 어떻게 도시의 단결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개신교 선전은 바로 이 모순을 정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오라녜 공 빌럼과 전국 선전 조직

시의회든 반군이든, 암스테르담 시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떤 매체로 전달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신중하게 저울질했습니다.

딘에 따르면 특히 반군 측이 이 분야의 고수였습니다. 1568년 반란이 시작된 이래 국가 차원에서 잘 작동하는 선전 조직이 구축되어 있었고, 오라녜 공 빌럼 역시 여기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빌럼은 아직 스페인 가톨릭 지배 아래 있던 도시들, 그중에서도 암스테르담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 서신 속에서 그는 스페인 병사들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며, 자신의 반란에 합류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어떤 만행을 겪게 될지 상세히 그려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반군들은 이런 전국 규모의 선전을 현지 상황에 맞게 재구성해 활용했습니다. 소문을 의도적으로 퍼뜨리거나 정치 성향의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었는데, 시의회가 가한 검열을 우회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정치 선전 노래의 대표적 사례로는 훗날 네덜란드 국가가 된 빌헬무스(Wilhelmus)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양 진영 모두 도시 주민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 했기 때문에,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당대 정세에 대해 남들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며 실제로 경청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거칠면서도 말솜씨 하나만큼은 뛰어난 암스테르담 시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