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 이국적인 사람들을 전시하는 행사가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서커스뿐만 아니라 박람회, 동물원, 세계 박람회에서도 1870년부터 1940년 사이 수백 개 집단의 사람들이 피부색, 의상, 풍습을 이유로 '특별한 볼거리'로 내몰렸다.
"훗날 나는 이국인에 대한 열풍 때문에 우리보다 더 큰 진기한 수집 진열장에 들어가게 된 고귀한 야만인들의 수많은 사례를 들었다. 암스테르담 여관 블라우 얀(Blaauw Jan)에 전시되었던 모호크족 인디언 신케타(Synchneta), 타히티 출신 오마이(Omaï), 돈을 조금 내면 엉덩이를 만져볼 수 있었던 '핫텐토트 비너스' 등이 그러했다. 소피는 빌럼이 헤이그에서 오렌지 강 부시맨 집단을 관람했다고 말했고, 나 또한 분노에 겨워 몇 장의 포스터를 찢어버린 적이 있다. 그 포스터에는 카를 하겐베크가 텐트와 말, 낙타, 양까지 갖춘 소말리아인 전시를 광고하고 있었는데, 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은 아이들이 작은 원숭이처럼 뛰어다녔다'고 한다." (출처: 아서 야핀, 『희고 검은 심장(The Black with the White Heart)』, 아르바이더르스 페르스, 암스테르담 2001, 177쪽)
그 시대 방문객들은 거의 매일 북미 인디언, 파타고니아·그린란드·실론(스리랑카)·소말리아·사모아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오두막, 신전, 궁전을 재현해 놓은 배경 속에서였다. 그곳에서는 전쟁 춤과 음악 공연이 열렸고, 종교 행렬이나 결혼 잔치에는 때때로 수만 명의 구경꾼이 운집했다.
식민주의의 살아 있는 증거
이국인을 전시하는 일은 19세기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이미 콜럼버스는 첫 항해에서 앤틸리스 제도의 아라와크 인디언들을 데려왔다. 이후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네 차례의 아메리카 항해에서 200명의 원주민을 추가로 데려와 스페인의 박람회에서 전시했다. 1533년에는 프랑스 루앙에서 브라질 투피남바 부족을 위해 마을 하나가 통째로 재현되기도 했다. 뒤이어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 제임스 쿡 같은 탐험가들도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사람들을 데려와 전시하게 했다.
이들은 식민지로 삼을 수 있는 먼 민족과 이질적 문화의 '살아 있는 증거'였다. 해외의 부를 상징하는 동시에, 다른 체격과 생활방식은 백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도구로 쓰였다. 사람들이 이들을 두고 '야만인'이라 불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이들은 수집품이나 전시 대상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궁정이나 부르주아 가정에서 흑인 하인으로 고용되는 정도에 그쳤다. 19세기 중반까지 이국인은 여전히 드문 볼거리로 남아 있었다.
진귀한 볼거리들
선천적으로 이질적인 외모 때문에 왕실, 박람회, 서커스에서 소규모로 사람을 전시하는 일은 이미 존재했지만, P.T. 바넘이 1835년경 샴 쌍둥이 창과 엥을 발견하면서 사람 전시는 전문적인 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그의 뒤를 이어 함부르크 동물원 소유주 카를 하겐베크는 1870년부터 자신이 수입한 기이한 동물들과 함께 사람들을 데려와 대규모 민속 쇼를 조직했다. 이른바 폴커스샤우(Völkerschau), '흑인 마을', 혹은 '인간 동물원'이라 불린 이 전시들은 유럽 전역에서 관람될 수 있었다. 세계 박람회와 식민지 박람회도 식민지에서 마을 통째로 옮겨오며 이에 뒤지지 않았다. 1881년 암스테르담 식민지 박람회에서는 수리남 흑인과 인디언, 그리고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주민들이 전시되었다. 심지어 1958년 브뤼셀 세계 박람회에서조차 콩고 마을이 세워졌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착취
짧은 시간 안에 과학적 데이터가 거의 전무한 수많은 이국인이 유입되면서, 인류학자들은 그들의 공연 전후로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사진이 촬영되고 신체 치수가 측정되었으며, 두개골 석고 모형이 여러 차례 제작되기도 했다. 이런 자료는 수많은 '문명 단계론'의 기초가 되었고, 인종 이론의 위계 질서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는 유럽 대중을 유혹하기 위해 제작된 화려한 포스터, 전단지, 엽서와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변하지 않은 '구경'의 시선
그러나 이 거대한 인간 쇼는 상호 교류나 타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종 간 위계가 존재한다는 생각과 식민주의의 정당성을 부추겼고, 백인의 우월감을 자극했다. 수천만 명의 방문객이 평생 처음으로 다른 피부색과 의상을 지닌 사람들을 접했지만, 그것이 존중으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고정관념과 편견만이 강화되었다.
'원숭이 구경'이라는 오락 형태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플랑드르 TV 프로그램 '토스트 카니발(Toast Kannibaal)'과 SBS 방송의 '정글에서 온 인사(Groeten uit de rimboe)', '그루턴 테루크(Groeten Terug)'의 높은 시청률이 이를 보여준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원주민들은 이른바 '획기적인 TV'의 단역으로 소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