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편지: 근세 유럽을 움직인 보헤미아 왕비의 숨겨진 이야기

그녀는 책상에서 대사 회담과 국제 조약을 주도하고 외교 관계를 좌우했으며, 전쟁으로 유린당한 근세 유럽에서 벌어진 공성전과 무력 충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문학 연구자 나딘 아커먼(Nadine Akkerman)은 새로 출간한 보헤미아의 왕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Elizabeth Stuart)에 관한 저서에서 그녀를 '무거운 의무의 삶을 강요당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라이덴 대학교 문화학 연구소 연구원인 아커먼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가 당시 유럽의 수많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오간 방대한 서신을 바탕으로 이 시리즈를 집필했습니다.

시리즈 두 번째 권인 『보헤미아의 왕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서신집 2권(1632~1642)』은 스튜어트가 과부가 된 뒤 남편으로부터 보헤미아의 국가 원수 역할을 물려받은 시기를 다룹니다.

"엘리자베스는 프리드리히 5세 국왕의 경박하고 사치스러운 왕비로 알려져 있었습니다"라고 아커먼은 말합니다. "그런데 편지들이 그리는 모습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남편 프리드리히 5세(팔츠 선제후이자 보헤미아 국왕)가 사망한 후 엘리자베스는 국왕의 역할을 떠맡아 잃어버린 팔츠 지역을 되찾기 위해 싸워야 했고, 이는 그녀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1632년 11월 전 시녀였던 브로튼 여경에게 쓴 편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엘리자베스는 이제 '무거운 의무의 삶'을 살게 되었다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언제 국가 원수가 될 줄 알았겠는가? 내가 평생 가장 싫어하던 역할인데 말이다.'"

솔직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

1632년부터 1642년 사이의 편지들이 주로 국정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의 솔직한 성격은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개인적인 서신에서는 때때로 타인을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제1대 칼라일 백작 제임스 헤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추한 낙타 머리"라고 부르며 놀렸고, 헨리 베인 경에 대해서도 "정직한 뚱뚱한 멍청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역할에 대한 그녀의 깊은 관여는 적에게 포로로 잡힌 아들 루퍼트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차라리 그 아이가 죽는 것을 보는 편이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 낫다." 이 말에는 아들이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해 적군의 세력을 강화할까 우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군사적·정치적·외교적 중요성

아커먼은 이어서 설명합니다. "엘리자베스의 서신을 통해 우리는 근세 유럽의 사건들을 더 폭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 모든 주요 인물들과 직접 교류하며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중요한 주제들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모든 인물들과 그들이 논의한 주제들이 그녀의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저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아커먼이 수집한 정보의 방대함입니다. 무려 1,224페이지 분량에 엘리자베스가 쓴 편지와 그녀에게 보내진 편지 총 622통이 실려 있으며, 47개의 서로 다른 출처에서 수집된 자료 대부분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필사본 형태로 옮겨진 편지뿐만 아니라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숫자 암호로 작성된 서신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암호들은 이번 연구에서 처음으로 해독되었습니다. 당시 대사와 외교관, 정치인들이 사용하던 바로 그 암호들이었기 때문에, 아커먼의 발견은 근세 유럽을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에게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예컨대 화가 피터 폴 루벤스의 미술 중개인이었던 발타자르 게르비에(Balthazar Gerbier)의 편지 모음을 해독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