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조각, 영혼을 담은 돌의 예술
E. B. 해블(Havell)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최고의 인도 조각은 최고의 그리스 조각보다 한층 깊은 감성과 숭고한 정서를 담아낸다."
신드(인더스) 문명의 조각
인더스 문명 시대 이후로는 불에 구운 점토로 만든 우상, 팔찌, 그릇, 장난감, 인장(印章)이 대량으로 발견됩니다. 링가(Linga)와 요니(Yoni), 제의에 사용되던 큰 혹과 거대한 뿔을 지닌 황소, 요기(Yogi)와 요기니(Yogini)의 표식이 새겨진 인장들이 출토되어, 당시의 머리 모양, 자세, 도량형, 장난감, 무용,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전해 줍니다.
이러한 조각들은 인더스 문화를 그 이전 또는 동시대의 다른 문명들과 뚜렷이 구별 짓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이를 통해 인더스 문명 주민들이 문자, 조각, 회화, 안무, 음악 등 여러 예술을 이미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문자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조각상, 자세, 링가와 요니, 장신구, 그릇, 건축 유적은 그 시대 문명에 대해 폭넓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인장에는 파람 푸루샤(Param Purush), 파라마나리(Paramanari), 다산의 여신 등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많은 우상 양옆에는 두 개의 잔 또는 등잔이 배치되어 있고 앞면에서는 연기 자국도 발견되었습니다.
마우리아 시대의 조각
파탈리푸트라, 마투라, 비디샤 등 여러 지역에서 마우리아 시대의 석조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조각들에는 마우리아 시대 특유의 광택 있는 연마 기법이 돋보입니다. 그중에서도 야크샤(Yaksha)와 야크시니(Yakshini)상은 가장 생동감 있고 아름다우며, 마우리아 민중 예술의 상징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디다르간지(파트나)에서 출토된 참마르그라히니 야크시(Chamargrahini Yakshi)상은 높이 7.5피트에 달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야크시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고 신체 부위의 적절한 볼륨감은 섬세한 예술성을 드러냅니다. 마투라 파라캄 마을에서 출토된 야크샤상 역시 8피트 8인치에 이르며, 소박한 조각 속에 장식을 절제한 미덕을 보여줍니다. 베스나가르의 여성상도 이 시기 조각 가운데 특별한 위상을 차지합니다. 아소카 왕의 석주 수부(柱頭)에 새겨진 각종 동물 조각은 그 시대 조각의 백미로 꼽힙니다.
또한 파트나, 아히차트라, 마투라, 카우삼비 등지의 유적에서 다수의 마우리아 조각상이 출토되었는데, 이들은 예술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마우리아 시대의 복식과 장신구에 관한 정보를 전해 줍니다. 특히 불란디바그(파트나)에서 출토된 무희 조각상은 주목할 만합니다.
조각에 대한 외세의 영향
마우리아 제국의 분열 이후 그리스인, 사카족, 쿠샨족, 훈족, 팔라바족, 스키타이족이 인도로 들어와 각지에 소국들을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인도 미술은 외래 미술, 특히 간다라 양식의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카니슈카 시대의 조각
라위손(Rawison)은 "쿠샨 시대는 인도 문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대다"라고 평했습니다. 카니슈카의 치세에 조각은 크게 융성했으며, 이 시기의 다수의 조각상이 마투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카니슈카 시대 마투라 양식의 조각상은 마투라 인근 '시크리(Sikri)'에서 산출된 적석(赤石)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쉽게 식별할 수 있습니다.
마투라 양식의 조각상은 거대한 크기가 특징이며, 수염이 없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 없는 조각상을 만드는 전통은 순수하게 인도적인 것입니다. 마투라의 쿠샨 조각상은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걸치지 않았고, 오른손을 두려움을 없애는 '아바야(Abhaya)' 인(印)의 자세로 들어 올렸습니다. 또한 부처가 옥좌에 앉은 모습이 표현됩니다.
간다라 양식의 성행
같은 시기 간다라 양식 조각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카니슈카와 그 후계자들이 건립한 불교 조각 대부분은 오늘날 파키스탄 간다라 지방에서 출토되었으며, 이 때문에 이 미술은 '간다라 미술'이라 불립니다. 간다라 미술의 조각상 다수가 화폐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간다라 미술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았기에 '인도-헬레니즘 미술' 또는 '인도-그리스 미술'이라고도 하며, 그리스 불교 양식으로 지칭되기도 합니다. 이 양식의 조각에서 부처는 연화좌(蓮華座) 자세로 표현되지만, 얼굴과 의복은 그리스 왕들을 연상시킵니다. 이 부처상들은 그리스 신 아폴로의 조각상과 상당히 흡사하며, 부처가 유럽식 의복과 보석을 갖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굽타 시대의 조각
굽타 시대에는 공예 예술이 크게 진전되었으며, 그 조각 양식은 카니슈카 시대 마투라 양식의 발전된 형태로 간주됩니다. 라마샹카르 트리파티 박사는 굽타 시대 예술에 대해 "굽타 시대 장인들의 작품은 과격한 기운이나 방종함이 없이 절제된 정제미를 지녔다는 것이 특색"이라고 기술했습니다.
닐칸타 샤스트리 박사는 "굽타 미술은 예술과 회화 분야에서 인도 재능의 발전을 상징하며, 그 영향은 아시아 전역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라메시찬드라 마줌다르 박사 역시 "높은 차원의 이상주의와 발달된 율동감과 미의식이 굽타 시대 미술의 특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굽타 시대에는 이전 시대에 비해 우상 숭배 관습이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신들의 조각상이 대량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조각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조각상이 지극히 아름답다.
(2) 외래의 영향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인도적이다.
(3) 윤리적 정신에 특별한 중점을 둔다.
(4) 이 시기에 나체 조각상 제작이 중단되고, 얇은 옷을 입힌 형상으로 바뀌었다.
(5) 지극히 소박하여 과도한 장식을 시도하지 않았다.
(6) 여성상은 근육감이 강조되고 풍만한 가슴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이 시기의 사르나트 불상은 매우 아름답고 생생합니다. 마투라에서 출토된 비슈누 신상은 굽타 시대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바라나시, 파탈리푸트라, 마투라는 굽타 시대 조각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르샤 시대의 조각
하르샤 왕의 치세에는 뛰어난 통치 능력과 더불어 예술과 문학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하르샤 자신도 예술과 문학의 애호가였습니다. 이 시기 인도에서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사원, 차이티야, 승가람(僧伽藍)이 대량으로 건립되었고, 사원 건축의 활발함 덕분에 조각 역시 실질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불교도는 아름다운 부처상을, 힌두교도는 시바와 비슈누 같은 신들의 아름다운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 조각에서는 바르시브(Bharshiva) 양식과 마투라 양식이 융합되어 원형 얼굴 대신 긴 타원형 얼굴이 조성되었습니다. 아잔타 제1·2번 석굴의 조각상들이 바로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술탄 왕조 시대의 조각
무슬림 세력이 인도에 들어오기 전 인도의 조각은 이미 매우 발전된 단계에 있었지만, 무슬림 침략자들은 우상 파괴를 이슬람에 대한 봉사이자 종교적 의무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인도 조각은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무함마드 고리와 쿠토브딘 아이바크의 침입 과정에서 델리, 아그라, 아즈메르 등지에 있던 고대 종교 유적지의 우상 대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많은 사원이 완전한 파괴를 피하고자 외벽에 이슬람 상징을 새겨 넣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원의 조각상은 전체 또는 일부가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술탄 왕조 시기에는 사원과 우상 건립이 전면 금지되어 북인도에서 조각의 발전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반면 남인도 비자야나가라 제국을 비롯한 힌두 통치자들이 다스리던 국가들에서는 사원과 조각상이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무굴 제국 시대의 조각
무굴 제국 시기에도 인도 조각은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부르와 후마윤 역시 철저한 이슬람 통치자로 조상(造像)을 죄악으로 간주하여 수많은 사원과 그 조각상들을 파괴했습니다. 아크바르는 개방적인 시각 덕분에 조각을 장려했고, 자한기르도 몇몇 조각상을 제작했지만, 샤 자한과 아우랑제브는 이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아 조각은 더욱 몰락했습니다. 특히 아우랑제브 치세에 인도 조각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