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자들이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 인근의 한 동굴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러 스페인 언론과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웹사이트가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벽화의 비정상적으로 오래된 연대는 이 그림들이 네안데르탈인의 작품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에게 추상적인 시각 예술을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번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물개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붉은색 벽화 근처에서 숯 잔여물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벽화를 그리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검증된 방법인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이 잔여물을 분석한 결과, 숯의 연대는 약 4만 3500년에서 4만 2300년 전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약 벽화 자체에 사용된 붉은 안료 역시 같은 시기의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 벽화는 프랑스 남부 발롱퐁다르크(Vallon-Pont d'Arc) 동굴의 아름다운 벽화들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 됩니다. 최근 연대 측정에 따르면 해당 벽화는 약 3만 년 전의 것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경우 스페인에서의 이번 발견은 더욱 경이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예술 감각과 상징성
이 벽화가 네안데르탈인과 연결되는 이유는, 이 원시 인류가 유럽 전역에서의 지배적 위치를 호모 사피엔스, 즉 현대 인류에게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내주고 난 뒤에도, 이베리아 반도의 에브로 강 이남 지역에서 약 3만 7000년 전까지 생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두뇌가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릴 만큼 발달하지 못했다고 믿어 왔습니다.
2010년 동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된 조개껍데기와 돌이 발견된 바 있으며, 이는 이 원시 조상이 분명 미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멍청한 동굴인'으로 여겨지던 이들의 두뇌는 생각보다 훨씬 발달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생물학자들은 추상적인 그림의 창작은 그 이상의 단계라고 판단해 왔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의 이번 발견 이후 일부 연구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한 수준의 상징화 능력과 창의성을 지녔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연대 측정의 함정
작년 발롱퐁다르크 벽화의 연대를 둘러싼 논쟁은 동굴 벽화의 정밀한 연대 측정이 얼마나 많은 함정과 논란에 둘러싸여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저명한 고생물학자 두 사람이 연대 측정 결과를 놓고 격하게 대립했으며, 두 분석 사이의 차이는 무려 5000년에 달했습니다.
설령 이번 연대 측정이 정확하다 하더라도, 코르도바 대학교(University of Cordoba) 연구팀과 함께 이 발견을 이룬 호세 루이스 산치드리안(José Luis Sanchidrián) 교수는 벽화가 실제로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당시 이 지역에 호모 사피엔스가 살지 않았다고 절대적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네안데르탈인의 작품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