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마르코비치 사건: 알랭 들롱이 경호원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순간

매립지에서 발견된 시체

1968년 10월 1일, 프랑스 이블린주(Yvelines)의 엘랑쿠르 마을에서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의 전직 경호원 스테반 마르코비치(Stevan Marković)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31세였던 마르코비치의 시신은 매립지에서 암석 수거 작업 중 부패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문제는 수사가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69~1974년 프랑스 대통령)의 주변까지 파고들면서, 단순한 살인 사건이 프랑스 현대사 최대급의 정치 스캔들로 비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르코비치 사건: 알랭 들롱이 경호원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순간

들롱과 마르칸토니, 검찰의 표적이 되다

수사망은 곧바로 '프랑스의 연인' 알랭 들롱과 코르시카 출신 갱스터 프랑수아 마르칸토니(François Marcantoni)에게 향했다. 결정적인 것은 마르코비치가 죽기 전 형 알렉산다르에게 보낸 편지였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만약 내가 살해당한다면, 그것은 100퍼센트 알랭 들롱과 '대부' 프랑수아 마르칸토니의 소행임을 기억하라."

마르칸토니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구속되었지만, 경찰의 확대 수사에서 유죄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풀려났다. 들롱 역시 세 차례에 걸쳐 소환되어 진술했으나, 그를 유죄로 만들 증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퐁피두 영부인을 담은 '핑크' 사진

조사 과정에서 훗날 대통령이 되는 인물의 아내, 클로드 퐁피두(Claude Pompidou)가 찍힌 사진들이 회수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핑크' 컷을 발견한 경감 뤼시앙 에메블랑(Lucien Aimé-Blanc)은 훗날 해당 사진들이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진영이 만든 선전물이라고 주장했고, 사진의 진위 여부는 의심스러운 상태로 남게 되었다.

1969년 1월 25일, 들롱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 청사에서 24시간이 넘게 진술해야 했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그를 에워쌌고, 이 장면은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마르코비치 사건: 알랭 들롱이 경호원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순간

'깨끗하지 않은' 피해자, 마르코비치

그러나 피해자 마르코비치 자신도 생전에 깨끗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화려한 파티를 열고,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해 자료를 축적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그는 이 영상 자료를 이용해 파티에 초대된 저명인사들을 협박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파티 손님 중에는 들롱의 아내 나탈리(Nathalie)도 있었는데, 두 사람이 짧은 불륜 관계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르코비치 사건: 알랭 들롱이 경호원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순간

들롱과 마르칸토니, 그리고 배우의 친구들인 다른 갱스터들 역시 여러 파티에서 촬영된 상태였다. 또 다른 '자료'에는 들롱, 마르코비치, 그리고 퐁피두 영부인이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당시 퐁피두는 대선 운동을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절이었다.

정권 최고위까지 번진 음모설

퐁피두 본인은 루이 발롱(Louis Wallon)과 앙리 카피탕(Henri Capitant)이 국가 정보기관 SDECE와 결탁해 자신을 겨냥한 성추문을 조작하고, 선거 운동에 타격을 주려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스캔들'은 르 피가로(Le Figaro)의 연달은 보도를 통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실제로 샤를 드골도 공화국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기 얼마 전, 내각 회의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수사에 따르면, 경호원의 난교 장면에 등장한 여성은 영부인을 상당히 닮은 매춘부였다. 이 필름은 마르코비치가 살해된 직후 그의 차량 안에서 발견된 것이다.

결국 웃은 사람은 퐁피두

마르코비치 사건 전체는 결국 조르주 퐁피두가 1968년 5월 드골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활용해 권력에 오르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치적 말살을 노린 '음모'에 대해 끊임없이 입을 열었다.

베르나르 비올레(Bernard Violet)의 저서 『레 미스테르 들롱(Les Mystères Delon)』은 이 스캔들의 전말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 책은 현대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출판되기도 전에 '사냥감'이 된 책이 되었다. 출판 당시 생존해 있던 유일한 당사자인 들롱이 저자에게 법적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은 예정대로 출간되었고, 예상대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마르코비치 사건: 알랭 들롱이 경호원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순간

영원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그렇다면 마르코비치의 죽음은 어떻게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참고로 두 사람의 인연은 1950년대 후반, 영화 촬영장 근처에서 벌어진 야외 몸싸움에서 시작되었다. 들롱은 마르코비치를 개인 경호원으로 고용했고, 세르비아 출신 그는 들롱을 통해 점차 프랑스 상류 사회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들롱은 1969년 이탈리아에서 사진작가를 폭행한 죄로 징역 4개월형을 선고받았으며, 21세 때는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군 교도소에서 45일을 복무한 전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