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든 사람의 자유, 평등, 정의와 복지를 위해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의 거부로 거대한 반인종차별 운동의 탄생을 이끌어낸 여성의 말입니다.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2005년 10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55년 12월, 몽고메리의 한 버스 안에서
1955년 12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Montgomery, Alabama). 재봉사로 하루 일과를 마친 파크스는 지친 몸으로 집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당시 법에 따라 흑인 승객용 좌석은 버스 뒤편에 있었고, 그녀는 뒤쪽으로 걸어가 비어 있던 첫 번째 자리에 앉았습니다.
몇 정거장이 지나자 몇몇 백인 남성들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서 있는 백인 승객이 생기자 운전기사는 즉시 유색인종 승객들에게 일어나 자리를 내주라고 요구했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모두 순순히 자리를 비켰지만, 파크스만은 운전기사를 똑바로 마주 보며 거부했습니다.

짐 크로우 법과 체포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유색인종과 백인을 분리하던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파크스는 결국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 사건은 곧바로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체포에 항의한 흑인 시민들은 무려 381일 동안 몽고메리 버스 불매운동을 벌였고, 이 사건은 법정까지 가게 됩니다. 그 결과 법원은 몽고메리 대중교통 시스템의 인종 분리 조치를 위헌으로 판결했고, 버스 좌석의 인종 차별은 마침내 종식되었습니다.

흔들리지 않았지만 대가는 컸다
파크스는 이후에도 끊임없는 인종차별과 협박, 폭력에 시달렸고, 결국 직장까지 잃으면서 1957년 앨라배마를 떠나 미시간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행보는 세계적인 존경을 받았습니다. 1996년에는 인종차별에 맞선 평생의 투쟁을 인정받아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받았으며, 이후 미국 최고의 민간 훈장인 '의회 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에도 선정되었습니다. 그녀의 저항은 오늘날까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The Montgomery Bus Boycott)"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로자 파크스가 남긴 명언
- "내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나는 물러남에 지쳤을 뿐입니다."
-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첫걸음을 내디디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시도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실패합니다."
- "교육이 없는 곳에 미래도 없습니다."
- "비전이 없으면 사람은 몰락하지만, 용기가 없으면 꿈은 죽습니다."
- "무언가를 위해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것이든 당신을 쓰러뜨릴 것입니다. 오늘날 굳건한 참나무는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어제의 작은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