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혁명의 얼굴들: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그리스 최초의 총독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Ioannis Kapodistrias)는 그리스 근대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삶은 그리스 국가 건설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는 새로 수립된 그리스 국가의 초대 총독(Governor)을 역임했다. 정치가이자 외교관, 학자였던 그는 자신의 모든 활동 분야에서 헬레니즘(Hellenism) 재건의 토대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귀족 가문에서 자란 코르푸의 청년

카포디스트리아스는 1776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던 코르푸 섬에서 태어나 귀족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안토니오스 마리아 카포디스트리아 백작으로, 코르푸 귀족들 중 가장 보수적인 파벌의 대표 인물이었다. 어머니 아다만티니 고네미 역시 귀족 출신이었다. 이러한 가문의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높은 교양과 학문적 소양을 갖추게 되었고, 1794년부터 1797년까지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의사로 개업했으며, 러시아·오스만 연합군이 섬에 주둔한 지 2년 후인 1799년에는 오스만군 야전병원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같은 시기인 1802년에는 코르푸 '국립의학협회' 설립을 주도하는 한편, 과학적 토론과 회원들의 정신적 수양을 목표로 하는 여러 문예 협회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오니아 제도에서 시작된 정치 경력

1800년 러시아·오스만 공동 통치 하에 이오니아 국가(헵타네소스 공화국)가 수립된 것은 카포디스트리아스 정치 활동의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1801년 여름, 그는 이오니아 국가 통치자 스피리돈 테오토키스의 특사로서 내전과 소요 사태로 어수선하던 케팔로니아에 파견되어 헌법 질서와 국가의 법치를 확립하는 임무를 맡았다.

혁명의 얼굴들: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그리스 최초의 총독

젊은 나이의 카포디스트리아스는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질서와 새로운 행정 체계를 확립했다. 이후 1803년 4월에는 이오니아 국가 상원의 만장일치로 외무·해사·통상 장관(국무장관)에 임명되었다. 1804년부터 1806년까지는 교육 감독관을 맡아 이오니아 제도 전역에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공공 도서관을 조직하는 등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807년 6월에는 레프카다 특파 위원이자 해당 지역 군사 작전 조정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이 지역은 자신의 영토 확장을 노리던 이오안나의 알리 파샤(알리 테페렌리) 군대의 포위 위협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군사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카포디스트리아스는 마르코스 보차리스,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 등 무장 투사들과 처음으로 접촉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훗날 그리스 독립전쟁의 중심 인물들이 된다.

러시아 제국의 외교 전선에서

1809년, 차르 알렉산드르 1세의 초청을 받은 카포디스트리아스는 러시아 외무성에서 근무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사실 그와 러시아 관료들의 협력은 이미 1803년 코르푸에서 시작된 바 있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그는 러시아 전권대사 게오르기오스 몬세니고스 백작과 긴밀히 협력하여 새 헌법을 마련했고, 1804년에는 차르로부터 대학 참事官(콜레지아 평의관) 계급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러시아 외무성에서 경력을 쌓던 시기는 러시아가 유럽 및 국제 외교 무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던 세계적 제국으로서 정점에 달해 있던 때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는 곧 유럽 외교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스위스 연방 결성과 신연방 헌법 기초를 위해 파견된 최초의 러시아 외교 사절단을 이끈 것, 빈 회의 기간 차르 알렉산드르 1세의 외교 고문을 맡은 것, 파리 강화조약 체결을 위한 최종 협상에서 러시아를 대표한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이정표였다.

외교계에서 쌓은 명망과 러시아 정치·외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협상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 그는 1816년 K. V. 네셀로데와 함께 러시아 외무 제2차관(공동 외무장관) 자리에 올랐으며, 1822년 그리스 문제를 둘러싼 차르 알렉산드르 1세와의 의견 차이로 사임하여 스위스로 물러날 때까지 실질적으로 그 직책을 유지했다.

혁명의 얼굴들: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그리스 최초의 총독

비밀결사의 제안과 단호한 거절

러시아 제국 내에서 카포디스트리아스가 차지한 높은 지위는 자연히 그리스 민족의 해열(解放熱)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1817년, 비밀결사 필리키 에테리아(Filiki Eteria)의 비밀 접촉 과정에서 이타키 출신 회원 갈라티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아 그를 방문했다. 그는 카포디스트리아스에게 혁명 계획을 밝히고 결사의 지도자 자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카포디스트리아스는 강하게 반응하며 지도부 수락을 거절하고 갈라티스에게 러시아를 떠날 것을 권고했다. 차르는 카포디스트리아스의 조처를 승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갈라티스의 체포를 명령했지만, 카포디스트리아스의 개입으로 그는 석방될 수 있었다. 이 시기 카포디스트리아스는 혁명 계획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드러냈다. 교육과 문화의 부족, 그리고 국제 외교적 현실(현상 유지)을 고려할 때 그리스 민족이 봉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822년 그는 제네바로 이주하여 약 5년간, 그 사이 파리를 오가며 지냈다. 그리고 1828년 1월, 새로 수립된 그리스 국가의 초대 총독 직무를 맡기 위해 그리스에 도착한다.

그리스 최초의 총독으로 선출되다

카포디스트리아스의 초대 총독(7년 임기) 선출은 1827년 트로이제나에서 열린 제3차 국민회의에서, 같은 해 4월 3일자 결의 제6호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에 앞서 그는 페테르부르크에 들러 러시아 외무성에 대한 공식 사임서를 제출했으며, 신즉위 차르 니콜라이 1세가 제안한 연금 수여마저 정중히 거절했다.

1828년 1월의 귀환 당시 그리스는 군사 작전과 내분으로 어지럽던 시기였다. 카포디스트리아스는 도착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종합적 계획을 추진했다. 행정 체계의 전면 재조직, 외교 채널을 통한 가능한 한 넓은 국경 확보, 강력한 행정부 구축, 그리고 오스man 통치 시절의 낡은 파벌들을 약화시켜 내부의 평화와 치안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혁명의 얼굴들: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그리스 최초의 총독

내부 갈등과 커져가던 반발

내부 갈등을 완화하고 파벌을 통제하기 위해 카포디스트리아스는 '판헬리니온(Panhellenion)'이라는 고문 기구를 만들어 주요 세력 전체의 대표들이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전통 세력에 의한 초기의 정치적 수용에 이어, 곧 강력한 반대 진영이 그를 향해 결집하기 시작했다. 주요 비난은 권력이 그 본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었다는 점, 그리고 지역 유력 세력들이 권력 구조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그의 두 형제 비아로스와 아우구스티노스는 그의 뜻에 따라 정치·군사 분야의 행정직을 맡고 있었다.

전쟁 기간 전통적인 해군 거점이었던 히드라 섬은 이내 카포디스트리아스 반대파의 요새로 변모했다. 히드라의 선주들은 독립전쟁 당시 혁명에 제공한 함선들에 대한 즉각적인 배상을 정부에 요구했고, 이를 관철하지 못하면 포루스 해군 기지 봉쇄 시도와 같은 강경 조치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다.

마브로미할리스 가문과 암살의 비극

유사한 반란은 이미 1830년, 또 하나의 투쟁 전통의 중심지인 마니에서 일어난 바 있었다. 마니 최고의 명문 가문인 마브로미할리스 가문이 주도한 이 반란은 페트로베이스의 동생 차니스 마브로미할리스가 이끌었다. 차니스는 체포되어 나프플리온 감옥에 수감되었고, 고향 마니로 돌아가겠다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탈옥 시도 끝에 다시 붙잡혔다.

이런 긴장감이 감돌던 상황에서 차니스 마브로미할리스가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한 페트로베이스의 아들 게오르기오스와 동생 콘스탄티노스는 복수를 위해 행동에 나온다. 1831년 9월 27일, 두 사람은 나프플리온의 성 니콜라스 교회 앞에서 총독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를 암살했다.

그러나 이 암살은 단순한 개인적 복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스만 통치 시절 유력 파벌들이 누려온 전통적 관계와 서열, 권력 중심지를 카포디스트리아스의 정책이 격변시켰다는 데서 비롯된, 시대적 전환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그리스 국가의 초석을 다지던 초대 총독의 죽음은 젊은 그리스 국가의 운명에 깊은 그늘을 남겼다.


* 스타티스 파블로풀로스(Stathis Pavlopoulos)는 판테이온 대학교 정치학·역사학과 준교수(Associate Docto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