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부오 후지타(藤田信雄)라는 일본 조종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그는 1942년 미국 본토에 두 차례의 공습을 감행해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을 타격하는 데 성공한 인물입니다. 순서대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미국 본토를 유일하게 폭격한 공습
1942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일본은 진주만 공습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대담한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바로 미국 본토(대륙부)를 직접 폭격한 것입니다. 전쟁 내내 적군의 손에 의해 미국 본토가 피격된 사례는 이것이 유일했습니다.
공습은 총 두 차례(9월 9일과 9월 29일)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오리건과 캘리포니아 주 경계 근처 해상에 정박해 있던 잠수함 I-25에서 발진했습니다. 후지타는 소형 수상정찰기 요코스카 E14Y '글렌'을 몰고 출격했는데, 흥미롭게도 목표는 도시가 아니라 숲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본군은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사이의 삼림을 폭격한 것입니다.
민간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땅에 피해를 입히고 미국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즉, 이 공격은 하나의 메시지였던 셈입니다. 마치 "우리는 언제든 너희를 칠 수 있다. 무섭지 않으냐?"라고 말하듯이요.
서류상으로는 성공, 실제로는 최악의 실패
공격은 서류상으로는 성공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군 항공 작전 사상 가장 큰 실패작 중 하나로 기록될 만했습니다. 물론 (아주 미약하게나마) 패닉이 번졌고 일부 전국 신문에도 보도되었지만, 문제는 일본군이 기상 예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기상 조건 속에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화재 확산이 크게 제한되었습니다. 여기에 소방대의 신속한 대응, 그리고 투하 고도 계산 착오까지 겹치면서 피해는 최소화되었습니다. (사실 성냥불과 휘발유 통 하나를 든 방화범이 두 차례의 공습보다 더 큰 피해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더 큰 피해를 낸 '풍선 폭탄' 전략
흥미롭게도 일본은 다른 방식으로 훨씬 큰 피해를 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풍선 폭탄(風船爆弾)' 전략입니다. 폭발물을 실은 수천 개의 풍선을 일본에서 띄워 편서풍을 타고 북미 대륙까지 날려보낸 것인데, 실제로 상당수의 풍선이 북미에 도달했습니다. 1945년 5월에는 오리건에서 풍선 폭탄으로 6명이 사망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쟁 중 미국 본토에서 적의 공격으로 발생한 유일한 민간인 사망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20년 후, 브루킹스로 향한 후지타
1962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두 차례의 공습을 이끌었던 노부오 후지타는 "폭격을 당했던" 도시 브루킹스(Brookings)를 방문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후지타는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그를 전범으로 재판하지 않겠다고 보장한 후에야 브루킹스를 찾았습니다.
브루킹스에 도착한 후지타는 약 400년 역사를 지닌 집안 대대로 내려온 고대 사무라이 검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일본 제국의 영광을 위해 저지른 공습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세푸쿠(할복), 즉 스스로 검에 몸을 던져 자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용서와 우정으로 맺어진 감동적인 결말
다행히도 브루킹스는 세푸쿠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지타는 현지 주민들로부터 지극히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도시를 재방문해 지역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1997년에는 브루킹스의 명예 시민권을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영예를 오래 누리지 못하고 같은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가족에 의해 브루킹스 인근 숲, 바로 1942년 후지타가 투하한 소이탄이 떨어졌던 그 자리에 뿌려졌습니다. 폭격자와 폭격당한 도시가 서로를 용서하고 우정을 나눴, 전쟁사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