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4년 7월 27일,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최측근들이 처형되면서 공포정치는 막을 내렸습니다.
공포정치란 무엇인가?
'공포정치(Régime de la Terreur)', 즉 테러 시대는 프랑스 혁명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유혈이 낭자했던 시기를 가리킵니다. 이 시기는 1793년 7월에 시작되어 1794년 7월 27일,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가 처형되면서 끝났습니다. 그와 함께 그의 최측근이자 동료였던 루이 생쥐스트(Louis Saint-Just)와 조르주 쿠통(Georges Couthon)도 같은 날 단두대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기간 자체는 짧았지만, 공공안전위원회(Comité de salut public)가 시행한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탄압 정책으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희생자들이었습니다.
단두대에서 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렇다면 그 끔찍한 한 해 동안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수치는 말할 것도 없이 참혹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정확한 통계를 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당시의 기록과 남아 있는 문서들을 바탕으로 추정하면 파리에서만 최대 3,000명이 처형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하루 평균 약 100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전 프랑스를 기준으로 넓혀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혁명 재판소를 통해 약 1만 6천~1만 7천 명이 처형되었으며, 재판조차 거치지 못한 채 옥중에서 사망하거나 즉결 처형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희생자는 3만 5천~4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피의 도시'
당시 목격자들은 더 이상 살기 힘든 도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회상합니다. 공기 중에는 피의 매캐한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파리의 거리는 아직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이었기 때문에, 그 냄새는 길바닥에 스며들어 오래도록 도시에 머물렀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공포정치는 혁명이라는 명분 아래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 프랑스 혁명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