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토 수용, 결코 조용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흔히 유대인들이 게토(ghetto) 수용을 무저항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상당수 유대인은 게토 생활이 가져올 참혹한 결과를 분명히 인식했고, 이에 맞서 적극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게토가 강요한 삼중의 제약
게토에 갇힌 유대인들은 세 가지 치명적인 제약에 직면했습니다.
첫째, 이동의 자유 상실이었습니다. 높은 벽과 엄중한 감시 아래에서 게토 밖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 되었습니다.
둘째, 경제적 기회의 붕괴였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정상적인 직업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가계는 빠르게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필수 자원 접근의 차단이었습니다. 식량, 연료, 의약품 같은 생존 필수품이 극도로 부족해지면서 굶주림과 질병이 만연했고, 이로 인한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목숨을 건 저항과 탈출
이러한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서도 많은 유대인들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밀수 네트워크를 통해 식량을 확보하거나 게토 밖과 정보를 주고받았고, 또 다른 이들은 위조 신분증을 손에 넣어 위험을 무릅쓰고 게토를 탈출했습니다.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처럼 무장 저항으로 번진 사례도 있었으며, 발각될 경우 처형을 각오하고서라도 도피를 선택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게토 수용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무관심이 아니라 저항이었습니다. 자유와 생존을 빼앗기는 상황 앞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맞서 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