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풀먼(George Pullman)과 철도 소유주들은 노조가 우편물을 나르는 철도를 봉쇄하는 것을 사전에 막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1877년 대철도 파업(Great Railroad Strike)은 미국 노사 관계의 역사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흐름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파업의 발단
당시 철도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근로 조건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고, 기관차 화부 조합(Brotherhood of Locomotive Firemen)이 파업을 선언하면서 이러한 불만이 표면화되었습니다. 파업은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시작되어 다른 주들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결국 약 1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전국 규모의 사태로 번졌습니다.
풀먼의 강경 대응과 연방군 투입
부유한 철도 소유주이자 산업가였던 조지 풀먼은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에 맞서는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노동자들과의 협상을 거부했고, 연방 군대를 불러들여 파업을 진압하려 했습니다. 러더퍼드 B. 헤이스(Rutherford B. Hayes) 대통령 역시 철도 소유주들의 편에 섰으며, 연방군 투입을 직접 명령해 파업을 분쇄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법적·물리적 수단의 결합
정부와 철도 회사들은 무력만 동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조의 봉쇄 행위를 '우편물 수송 방해'라는 명분으로 규정해 법원의 금지명령(injunction)을 받아내고, 노조 지도부를 기소하는 등 법적 수단까지 병행하며 노조를 압박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1894년 풀먼 파업(Pullman Strike)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당시 연방 정부는 우편열차 운행 방해를 구실로 삼아 파업을 진압한 바 있습니다.
결과: 노동자의 패배와 노동운동의 침체
파업은 결국 노동자들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오랜 기간 미국 노동운동이 침체기를 겪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정부와 기업이 파업에 대해 무력과 법률을 모두 동원해 대응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