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 마녀 혐의를 받은 사람들은 교수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교수형은 당시 이 지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처형 방식이었으며, 살인, 강도, 반역죄 등 다른 중범죄를 처벌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세일럼 마녀재판과 교수형
1692년부터 1693년까지,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주 댄버스(Danvers)에 해당하는 세일럼 빌리지에서 벌어진 악명 높은 세일럼 마녀재판(Salem Witch Trials)에서는 마술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무려 19명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재판은 마을의 젊은 여성들이 공동체 여러 구성원들이 자신들에게 초자연적인 해를 입혔다고 고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들을 몰아붙인 증거의 대부분은 소문과 추측, 그리고 억측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고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공개 처형의 잔혹한 현장
당시 교수형은 대개 공개적인 장소에서 집행되었으며, 수많은 군중이 이를 구경하러 모여들곤 했습니다. 피고인들은 처형대에 오르기 전 최후의 말을 남길 짧은 기회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더욱 참혹한 것은, 처형이 끝난 뒤에도 시신이 며칠간 매달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녀 혐의로 고발될지도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로 삼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참고로 예외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농부 길스 코리(Giles Corey)는 재판 불응 혐의로 돌로 깔아 눌러 죽이는 압사형(壓死刑)을 받았으며, 이는 세일럼에서 교수형 외에 처형된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녀재판은 어떻게 끝났나?
세일럼 마녀재판은 시간이 지나며 여론이 재판 절차 자체에 의심과 반감을 품기 시작하면서 점차 힘을 잃어갔습니다. 결국 1693년,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 총독이 마녀 혐의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사면령을 발표하면서 재판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진실 규명의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매사추세츠는 18세기 초 피해자들에게 명예 회복과 배상을 실시했으며,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마지막 피해자들의 이름이 완전히 누명에서 벗겨졌습니다. 세일럼 마녀재판은 오늘날까지도 집단 히스테리와 법적 부당함이 가져올 비극을 상징하는 역사적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