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 말기, 윌리엄 테컴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장군은 조지아주와 캐롤라이나 지역을 행진하는 동안 부대에서 이탈해 약탈을 일삼던 병사들, 이른바 '범머(bummers)'를 막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들의 활동을 묵인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유는 범머들이 민간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남부 민간인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 셔먼의 전략 목표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셔먼의 '바다로의 행진'
1864년 가을, 셔먼은 애틀랜타를 점령한 뒤 조지아주를 가로질러 사바나로 진격하는 소위 '바다로의 행진(March to the Sea)'을 감행했습니다. 이듬해인 1865년에는 남북 캐롤라이나까지 전역을 확장하며 남부 연합의 후방을 유린했습니다. 이 작전은 단순한 영토 점령이 아니라, 적의 전쟁 수행 능력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범머는 누구였나?
범머란 행진 경로 주변의 농장과 마을에서 곡물, 가축, 마차 등을 징발하거나 약탈한 북군 병사들을 가리키는 속칭입니다. 셔먼은 제120호 특별야전명령(Special Field Orders No. 120)을 통해 각 여단이 행진로에서 일정 거리 내의 식량과 가축을 징발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이는 군대가 보급선 없이 현지에서 생존하기 위한 조치이자 동시에 남부 경제를 타격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명목상 징발이었지만 실제로는 개인적인 약탈과 파괴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장려한 이유: '하드 워' 전략
셔먼이 범머들을 막지 않은 핵심 이유는 그의 '하드 워(hard war, 강경전)' 철학에 있습니다. 그는 남부 민간인들이 전쟁을 지원하는 한 그들 역시 전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철도를 끊고 창고와 면화 저장소, 공장, 농업 기반을 파괴하는 것은 남부군의 보급과 전투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켰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파괴는 남부 민간인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몸소 체감하게 만들어 전쟁 지지 여론을 무너뜨리는 심리전 효과를 냈습니다. 셔먼은 "전쟁은 잔혹함이며, 그것을 다듬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짧고 강력한 타격으로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결론
요컨대 셔먼에게 범머들의 약탈과 파괴는 통제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활용해야 할 전략 자원이었습니다. 민간 인프라 파괴와 사기 저하는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 아니라 바다로의 행진과 캐롤라이나 원정의 핵심 목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총력전 방식은 이후 전쟁사에서 민간과 군사 목표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 선례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