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학살(1770년 3월 5일)이 일어났을 때, 벤자민 프랭클린은 보스턴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영국 런던에 머무르며 매사추세츠 식민지를 대표하는 공식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런던에서의 프랭클린의 역할
프랭클린은 1757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런던에 체류하며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매사추세츠 등 여러 식민지의 이익을 대변했습니다. 그의 핵심 임무는 식민지와 영국 본국 정부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과 요구를 왕실과 의회에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학살과 프랭클린의 반응
1770년 3월 5일, 보스턴에서 영국군 병사들이 시위 중이던 민간인 다섯 명을 쏘아 죽이는 '보스턴 학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이 런던에 전해졌을 때 프랭클린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동시에 양측 간의 긴장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는 미국 독립 혁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온건한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정리
결론적으로, 보스턴 학살 당시 프랭클린은 사건 현장과 멀리 떨어진 런던에서 매사추세츠 식민지의 대표로서 외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는 사건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훗날 식민지와 영국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배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