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E. 리 프로필 한눈에 보기
- 출생: 1807년 1월 19일, 미국 버지니아주 스트래트포드 홀(Stratford Hall)
- 사망: 1870년 10월 12일, 버지니아주 렉싱턴(Lexington)
- 부모: 아버지 헨리 '라이트호스 해리' 리 3세(Henry "Light-Horse Harry" Lee III), 어머니 앤 힐 카터 리(Anne Hill Carter Lee)
- 형제자매: 형제 카터(Carter)와 스미스(Smith), 여동생 밀드레드(Mildred)
유년 시절과 교육
로버트 E. 리는 버지니아의 명문 가문인 '스트래트포드 홀의 리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헨리 '라이트호스 해리' 리 3세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활약한 유명한 기병 장교였으며, 훗날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앤 힐 카터 리 역시 버지니아의 저명한 카터 가문 출신으로, 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부 상류 사회의 중심에서 성장했습니다.
리는 초기에 집안과 버지니아의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825년 뉴욕 웨스트포인트에 위치한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1829년 전체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리는 약 32년간 미국 육군에서 복무했습니다. 공병대에서 근무하며 멕시코-미국 전쟁에 참전해 전공을 세웠고, 1852년부터 1855년까지는 모교인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교장(감독관)을 맡으며 후배 장교들의 양성에도 기여했습니다.
남북전쟁과 군사 경력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리에게는 북군(연방군) 최고 사령관 자리가 제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충성은 연방 정부가 아니라 고향 버지니아에 있다"는 신념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남부연합군에 합류했습니다.
1862년 6월, 리는 북버지니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전선에 나섰습니다. 그는 제2차 불런 전투(제2차 매너서스 전투)와 챈슬러즈빌 전투 등 여러 주요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전술로 승리를 이끌며 '천재적인 방어전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1863년 7월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군에 패배하면서 전세는 크게 기울었습니다. 이 전투는 남북전쟁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리의 군대는 이후 전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865년 4월 9일, 리는 버지니아 애포매톡스 코트 하우스에서 북군 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에게 항복했고, 이로써 길고 참혹했던 남북전쟁은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 이후의 삶
전쟁이 끝난 후 리는 버지니아로 돌아와 렉싱턴에 있는 워싱턴 칼리지(오늘날의 워싱턴 앤 리 대학교)의 학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패전의 상흔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 헌신했으며, 187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장직을 수행했습니다.
로버트 E. 리의 유산과 논란
로버트 E. 리는 오늘날까지도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 지휘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동시에 그는 명예와 성실함, 용기를 갖춘 신사적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리가 싸운 남부연합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진영이었기 때문에, 그를 '영웅'으로 기념하는 것에 대해 현대 미국 사회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버트 E. 리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복잡한 역사적 평가가 얽힌 인물로, 오늘날에도 많은 관심과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