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고문당한 사람은 어떻게 치료했을까? 중세의 기이한 '고문 후 재활'

고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고문은 오늘날 우리가 그리는 중세 이미지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고문의 고통이 끝난 뒤에는 치료의 시간이 이어졌고, 의사보다 앞서 고통을 진지하게 연구한 이들은 의외로 법률가들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외과의사 굴리엘모 디 살리체토(William of Saliceto)는 여러 중요한 저술 가운데 『채찍질과 거수형 고문으로 다친 사람들의 상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교과서를 남겼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각종 고문으로 다친 환자들이 실로 많았고, 의사의 관점에서 이 문제는 체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고문과 고통은 의사보다 법률가들의 훨씬 큰 관심을 받았다. 에스더 코언(Esther Cohen)은 이렇게 적었다.

"의사들이 고통을 진단하고 해석하며 치료하려 했다면, 판사들은 정반대였다. 판사들 역시 학식 있는 전문직이었고, 의사들이 꿈꾸기도 전에 자문서(consilium)를 집필했다. 그러나 의사와 달리 그들의 뿌리는 로마법에 깊이 닿아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고문의 정당성과 고문에 관한 기본 문헌을 발견했다. [...] 고문과 관련 주제에 논문과 소견을 바친 판사의 수는 매우 많다."

중세의 '스파' 치료

살리체토의 유명한 외과의사는 위생 옹호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신생아에게 잦은 목욕을 권했고 임산부에게 더 철저한 위생을 강조했다. 또한 상처의 화농이 치유의 좋은 징조라던 갈레노스의 견해에 반대했으며, 그의 방법은 성공적이어서 제자 밀라노의 랑프랑크(Lanfranc of Milan)를 통해 프랑스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의 저술에는 고문 피해자를 위한 내용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문당한 사람은 어떻게 치료했을까? 중세의 기이한  고문 후 재활

고문당한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려면 당대 가장 널리 쓰인 고문 방식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피어스 미첼(Piers Mitchell)의 연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13세기 이후 종교재판소가 사용한 전형적인 고문 방식으로는 매달기, 늘이기, 불로 지지기가 있다. 매달기 고문에서는 심문 대상의 발에 추를 달고, 등 뒤로 얽어 묶은 손목에 매준 밧줄로 몸을 들어 올렸다. 도래(reel)로 고문당하는 사람을 끌어올린 뒤 툭 떨어뜨리면 어깨 관절이 탈구되곤 했다."
고문당한 사람은 어떻게 치료했을까? 중세의 기이한  고문 후 재활

차륜형(바퀴) 고문 역시 인기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굴리엘모의 기록에는 발바닥을 두들겨 다친 사람들에 대한 처방도 포함되어 있다. 네이선 벨로프스키(Nathan Belofsky)는 이렇게 전한다. "예컨대 말에게서 막 벗겨낸 아직 따뜻한 가죽에 고문 피해자를 감싸라고 조언했다. 이 시술 후에는 편안한 목욕과 저지방 식단을 권했다."

환자를 가죽에 감싸는 아이디어는 오늘날 '외과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 드 숄리약(Guy de Chauliac)이 이어받았다. 아직 따뜻한 동물 가죽 처방에 더해, 그는 고문당한 자의 몸을 신선한 말똥으로 덮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누워 있는 사람을 걷어차는 것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바퀴에 부러진 사람의 상태를 크게 악화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 드 숄리약은 원칙적으로 합리적인 의사였고, 이미 죽은 사람을 치료하려 들지 말라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착한 형집행인, 나쁜 형집행인

풍부한 의학 지식을 지닌 이들이 의외로 고문 담당자, 즉 형집행인들이었다! 물론 형집행인의 치료 행위는 환자를 진짜로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고문할 수 있도록 목숨만 붙여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직업 특성상 형집행인들은 인체 해부, 혈액 순환, 개별 장기의 역할에 대해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사고를 당했을 때 이 천시받는 직업의 대표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도 가능했고, 그는 상처를 처리해 줄 수 있었다. 심지어 형집행인의 치료 서비스를 규정한 특별 규정까지 등장했다. 네이선 벨로프스키는 이렇게 보도한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적절한 허가를 받아야 했다. 역사가 캐시 스튜어트(Kathy Stuart)는 저서 『Defiled Trades and Social Outcasts』에서 말을 잘 치료한다고 자신한 한 지원자와, 사람의 목을 벨 만큼 젊지 않다고 인정한 다른 지원자들을 소개한다. 형집행인들은 결코 살인을 한 적 없으며 유대인과 함께 일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의 치료사들이 특별한 필기시험을 통과하도록 요구했다."

악마에게는 치료가 통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직접 고문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것이 (그들 생각에) 치료의 일환이었다. 악마나 악령의 씌임이 하나의 질병으로 공인되면서, 의사들은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진단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대개 불경한 세력과 거래한 혐의를 받은 환자의 몸에서 의사는 '악마의 낙인'이라 불린 특정 징후를 찾았다. 그것을 발견하면 환자는 고문실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환자'는 물론 모든 것을 자백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고문당한 사람은 어떻게 치료했을까? 중세의 기이한  고문 후 재활

형집행인이 고문 피해자를 치료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에 대한 고문에 반대하는 몇몇 목소리는 악마 관련 미신 속에 묻혔고, 정신질환이나 간질에 대한 세상의 이해는 한참 뒤에야 이루어졌다. 유명한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 본인도 간질 환자에게 악령 씌임을 진단했고, 마녀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악마 씌임의 치료로 고문을 처방했던 바로 그 의사들이, 이후 '회복된' 환자들을 치료했을까? 아마 상처를 돌보긴 했겠지만, 정신질환 치료법이나 간질 발작 예방법이 알려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한편 고문이 몸과 마음에 남긴 수많은 상흔은 오늘날에도 의학이 효과적으로 치료하지 못한다. 문명 세계가 고문을 공개적으로 규탄하지만,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미국,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고문은 여전히 비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 문헌

  1. Belofsky, N., How Was Treated in the Past, RM 출판사, 바르샤바, 2014
  2. Mitchell, P., The Torture of Military Captives in the Crusades to the Medieval Middle East, University of London, 2006
  3. Cohen, E., The Modulated Scream: Pain in Late Medieval Cultur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