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슴호의 운명, 두 가지 기록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1577년부터 1580년까지 세계일주를 이룩하며 탔던 황금사슴호(Golden Hind)는 영국 해양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배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전해집니다.
버전 1: 뎁퍼드 조선소에서 화재로 소실되다
첫 번째 기록에 따르면, 황금사슴호는 1588년 그리니치 인근 해안으로 끌어올려진 뒤 두 부분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선수(船首) 부분은 재건되어 보존되었고, 뎁퍼드(Deptford) 조선소의 지붕 없는 보호 창고 안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3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오랜 세월을 겨뎌 온 이 유물은 마침내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버전 2: '리벤지호'로 거듭나 아조레스에서 최후를 맞이하다
또 다른 기록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황금사슴호는 드레이크의 지휘 아래 세계일주를 마친 후 해체되었고, '리벤지호(Revenge)'라는 새 이름으로 재건되었다는 것입니다.
리벤지호의 마지막 항해는 1591년 10월, 아조레스 제도 공격을 목표로 한 월터 롤리 경의 원정이었습니다. 당시 부제독으로 참전한 리처드 그렌빌 경(1541~1591)은 자신의 배와 소형 호위함 '포사이트호(Foresight)' 단 두 척만으로 무려 53척에 달하는 스페인 군함과 맞섰습니다. 그렌빌은 항복이라는 선택지를 일축하고, 배에 탔던 모든 병사가 죽거나 쓰러질 때까지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결국 스페인 함대에 패배한 그렌빌은 부상으로 숨을 거두었고, 리벤지호 역시 안그라두에로이스무(Angra do Heroísmo) 앞바다에서 그 생명을 다했습니다.
마무리하며
두 기록 중 어느 쪽이 실제 역사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어느 이야기든 황금사슴호가 단순한 전설 속 배가 아니라 영국 해양사의 영광과 비극을 함께 짊어진 상징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