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신정부가 가장 먼저 추진한 과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정부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판적봉환과 폐번치현
신정부는 먼저 각 번의 영주들에게 영토와 인민을 천황에게 반납하는 판적봉환(版籍奉還)을 실시했습니다. 사쓰마·조슈·도사·힌젠의 네 번이 앞장서 본보기를 보였고, 이에 다른 번들도 잇달아 따르게 되었습니다. 구 번주들은 종래의 석고(石高) 대신 가록(家祿)이라는 봉급을 받는 조건으로, 일단은 기존의 번정 업무를 계속 맡아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구 번주들의 새로운 제도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이에 신정부는 마침내 폐번치현(廢藩置縣)을 단행하기로 결심합니다.
폐번치현의 결과로 전국의 모든 번이 폐지되어 현(縣)으로 바뀌었으며, 구 번주들은 파면된 뒤 도쿄에서 거주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중앙 정부가 파견한 현령(縣令)과 권현령(權縣令)이 지방 행정을 담당하게 되면서, 드디어 국내 정치의 통합이 실현되었습니다.
* 폐번치현을 통해 막번(幕藩) 체제가 붕괴되어 에도 시대가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지조개정(地租改正)
재정 기반이 불안정하던 메이지 정부는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토지 제도 개혁, 즉 지조개정에 착수했습니다. 이를 통해 토지의 사유재산제가 인정되었고, 지가(地價)가 책정되었습니다.
지조개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과세 대상 : 종래의 수확량에서 지가로 변경
- 세율 : 지가의 3%
- 납세자 : 경작자에서 지주로 변경
- 납부 방법 : 현물 납부에서 금전 납부로 변경
이처럼 지조는 전국 공통의 기준으로 통일되어, 수확량의 증감과 관계없이 금전으로 균일하게 징수되었습니다. 이로써 정부 재정의 토대가 완성되었습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 노선
신정부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부국강병(富國强兵) 노선입니다.
일본은 모든 방면에서 서구 열강에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정부 주도로 식산흥업(殖産興業)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금융 분야에서는 신화폐조례(新貨條例)가 제정되어 엔(圓)·센(錢)·린(厘)의 화폐 단위가 확립되었습니다. 아울러 국립은행조례가 반포되어 제1국립은행이 설립되었습니다.
통신·교통 분야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종래의 비야쿠(飛脚,전속 배달꾼)를 대체하는 관영 우편 제도가 설립되어, 우편물이 전국 어디든 균일한 요금으로 배달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운업에서는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郎)가 정부의 보호 아래 사업을 키워 외국 항로를 개설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872년에는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당시 수출의 중심이던 생사(生絲) 생산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군마현에는 관영 도미오카 제사장(富岡製絲場)을 세우고 프랑스의 최신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는 에조치(蝦夷地)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해당 지역이 홋카이도로 개칭되었고, 개척사(開拓使)가 설치되어 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부국강병을 지향하던 정부는 서구의 산업 기술과 사회 제도는 물론, 학문·사상·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를 폭넓게 수용하며 근대화를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문명개화'라 불리는 새로운 풍조가 민중의 일상 속에서 탄생하여, 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