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환경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생태와 재활용은 우리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 에도 시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됩니다.
에도 시대의 생활상을 다룬 글에서 잠깐 언급한 적 있듯이, 에도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상적인 에코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에도에서의 생활은 거의 낭비가 없었으며, 귀한 자원을 알뜰하게 활용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친환경적인 삶'이었던 셈입니다.
에도 시대의 환경 정책
당시 환경 대책은 막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했으며, 에도 시대가 시작된 지 약 50년 후에는 제도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습니다.
1655년: 쓰레기 투기 금지와 매립 정책
1655년에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가 금지되었고, 에이요지마(永代島)가 쓰레기 처리장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매립 정책도 이미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666년: 산카와 법령(山川法度)
1666년에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토지 황폐화를 막기 위해, 막부가 추가 개발을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신전 개발(新田開発)이 유행했지만, 이는 전국적으로 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막부는 항상 농업 기술의 발전에 주력하면서 자연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에도의 재활용 산업
이러한 생태적 감각은 일반 백성들 역시 지니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투기가 금지되었지만, 사실 서민들은 원래부터 그다지 쓰레기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에도의 거리에는 헌 옷 가게, 종이 수거업자, 무쇠고장이, 등불 가게 등 다양한 재활용 업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인분 거래: 현대에는 불가능한 상징적 재활용
현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징적인 재활용 사업으로 인분을 수거하는 '시모코에(下肥) 수거업'이 있었습니다. 이 사업은 인분을 비료로 팔아 농부들에게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1년치 인분의 값은 쌀 한 톨(약 14kg)에 해당한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그들의 인분은 고가에 거래되었다고 하며, 에도 성 해자에서 정기적으로 운반해 나갔다고 합니다.
맑았던 스미다강
에도의 거리에는 하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미다강 하구는 흰 물고기(시라우오)가 잡힐 만큼 맑았습니다. 반면 완벽한 하수도 시설을 갖춘 파리와 런던의 강은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재와 고철까지 아깝지 않게
재활용 업자 중에는 '재 사는 장수'도 있었습니다. 재는 비료나 염료의 촉매제로 사용되었고, 술을 빚는 데 쓰이는 화학 재료로 활용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도자기를 수선하는 '야키츠기야(焼き継ぎ屋)', 강바닥에 버려진 고철을 줍는 '테츠나게야(鉄投げ屋)' 등이 있어, 에도에는 어떤 것 하나 버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
현재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자원 순환 시스템에는 재사용(reuse), 재생(regeneration), 임대(rental) 같은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에도 시대에는 이 모든 요소가 이미 갖춰져 있었습니다. 환경 보전에 대한 에도 사람들의 높은 의식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