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은 기술 발전과 자본가·노동자 관계의 변화 등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점차 전 세계를 크게 변화시켰고, 먼 바다 건너 일본 사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산업혁명에 필요한 요소란?
영국 산업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산업혁명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은 왜,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농업혁명과 무역
영국 산업혁명 이전, 영국은 전통적인 모직 공업으로 무역을 하며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도산 면직물에 주목하게 되는데, 가볍고 염색이 쉬운 면직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면직물을 직접 생산하고자 한 영국은 모직 공업으로 쌓아둔 풍부한 자금을 면직물 생산에 투자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에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차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면직물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집니다.
해외 시장의 확대
영국은 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와의 식민지 전쟁에서 승리하며 해외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면제품의 원료가 되는 목화 등을 재배하는 식민지를 개척하고, 면제품의 수출처로 삼아 적극적으로 무역을 전개했습니다.
농업혁명으로 인한 임금노동자 증가
여러 농지를 하나로 묶는 2차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은 효율적인 4년 윤작 농법의 보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임금노동자로 전환되면서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면직물 공업을 뒷받침한 세 가지 혁신
기술혁명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저렴하게 생산하려면 대량생산이 필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제니 방적기(제임스 하그리브스), 수력 방적기(리처드 아크라이트), 뮬 방적기(새뮤얼 크롬프턴) 등 방적 분야의 발명이 잇달아 일어났고, 이후 에드먼드 카트라이트가 '역직기(power loom)'를 발명하며 직포 분야까지 기계화가 확산되었습니다.
동력혁명
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열로 기계를 구동하는 '증기기관'은 인력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동력을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기관을 대폭 개량하면서 공장 기계의 동력원으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교통혁명
와트가 개량한 증기기관은 증기선과 증기기관차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증기선과 증기기관차는 사람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운송할 수 있게 하여 무역이 한층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공장' 영국이 세계에 미친 영향
'세계의 공장'이라 불린 영국은 전 세계에서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뒤 다시 수출하는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벨기에,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등 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 물결은 일본의 산업혁명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일본의 산업혁명
청일전쟁 전후, 경공업인 제사(양잠)와 방적 공업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영국에서 수입하던 면제품을 이제 일본에서 직접 생산해 중국과 한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사업에서 생산된 생사 역시 미국으로 성공적으로 수출되며 외화를 획득했습니다.
중국과 인도에서 값싼 면화를 수입해 원가 절감에 성공하면서 경공업 제품의 수출량이 늘었고, 일본 공업은 크게 발전했습니다.
소액의 자본으로도 설치할 수 있어 널리 보급된 '가라가마 방적기(ガラ紡)' 덕분에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공업이 발전하면서 '공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아시오 동광 광독 사건'이 일어나 농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한편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건설된 '야하타 제철소'를 비롯해 철강, 전기, 조선 등 중공업 분야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최대 과제, '노동문제'
공업 발전을 떠받친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가운데 노동자 사이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퍼져나갔습니다.
오늘날 말하는 '블랙 기업(악덕 기업)' 문제는 이미 이 시대에도 존재했던 사회문제였던 셈입니다.
농촌 사회,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다
농촌에서는 격차 확대로 농지를 잃은 '소작농'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농촌 사회에는 여전히 봉건적인 지주·소작 제도가 남아 있어 국내 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자원'과 '시장'을 해외에서 찾아야 했고, 이는 '제국주의' 노선으로의 전환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