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소빙기 에도시대 사람들의 겨울나기, 어떻게 추위를 이겨냈을까?

최근 들어 전국시대의 시작과 관련해 새로운 학설이 하나둘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4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소빙기(Little Ice Age)'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15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기온이 유독 낮았는데, 평균 기온 차이가 2~3℃ 정도로 작아 보여도 농작물 생육에는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인 변수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와 에도시대를 거치며 흉작에 따른 기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흉년은 있지만 수입 쌀이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식량 부족이 곧바로 목숨 문제로 이어지는 중대한 위기였습니다.

실제로 전국시대의 전투 대부분은 가을부터 이듬해 봄 사이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접 영지를 침공해 갓 수확한 곡식과 재물을 약탈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부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장기 출정으로 자국의 식구 수를 줄여 식량 수요 부담을 덜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까지의 주요 기근

간쇼 기근1459년교토에서만 8만 명 이상 사망
덴몬 기근1540년수만 명 사망
간에이 대기근1642년5만~10만 명 사망
교호 대기근1732년96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기록
덴메이 기근1782년인구가 92만 명이나 감소
덴포 대기근1833년70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림

이러한 기근은 소빙기의 영향뿐 아니라 화산 폭발로 인한 일조량 부족도 한몫했습니다. 그러다 19세기에 들어서며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하자 기근도 점차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소빙기 시대, 서민들은 어떻게 추위를 이겨냈을까?

오늘날 도쿄의 여름은 30℃를 넘는 날이 드물지 않지만, 에도시대의 여름 평균 기온은 25℃ 안팎으로 비교적 쾌적했다고 합니다. 반면 겨울에는 스미다강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였고, 삿포로의 3월 평균 기온은 영하 4℃에서 영상 4℃ 사이였다고 전해집니다.

난방 시설도 부족하고 코트나 히트텍 같은 것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추위를 버텼을까요?

에도시대 주택의 건축 재료는 나무와 종이가 주류였기 때문에 기밀성이 매우 낮아 실내 온도가 극히 낮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난방 도구라고 해야 화로(火鉢)와 손난로 정도로, 방 전체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큰 활약을 한 것이 겨울 실내복으로 쓰이던 '온포(褞袍)'입니다.

한자로 쓰기 어렵지만,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름으로는 '도테라(돗테라)'입니다.

'단젠(丹前)'이라고도 불립니다. 긴 것은 단젠, 짧은 것은 도테라로 구분해 부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옷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옷들은 기모노보다 한 사이즈 크게 만들어 솜을 꼼꼼히 채워 넣었습니다.

에도 초기에는 이국 취향을 즐기던 기본(旗本) 무사들 사이에서 유행한 '단젠풍 소매'에 솜을 듬뿍 넣은 형태가 그 기원이 되었고, 에도 후반기에 이르러 서민들의 겨울옷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실내복이었기 때문에 외출할 때는 입지 않는 것이 예의였지만, 장인처럼 밖에서 작업할 일이 많은 사람들은 점퍼 대신 입곤 했다고 합니다. 또한 솜을 넣어 만든 '반테리(한텐)'와 조끼형 '짱짱코'도 등장했습니다.

에도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카파(레인코트)'

오늘날 빗길 나들이의 필수품인 카파(레인코트)는 에도시대에도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에 활약했습니다.

요즘은 멋스럽게 '레인코트'라고 부르지만, 한자로는 '합우(合羽)'라고 적습니다.

합우의 종류는 다양한데, 망토처럼 두르는 '마와시 아이바(巻合羽)'는 여행용으로 쓰였습니다. '추운 우고잔스'로 유명한 북풍 소년이 걸치고 다니던 바로 그 옷이지요.

가장 널리 쓰인 우비는 방수 처리한 종이와 솜으로 만든 '반합우(半合羽)'였습니다.

또한 카사지조(笠地蔵) 설화로 친숙한 '미노(蓑)'는 겨울 방한용으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요코하마에는 눈이 내리지만, 에도시대에는 발목까지 쌓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짚으로 엮은 모자와 미노 차림새는 주로 농촌 지방에서 흔했습니다.

에도 중기에는 '양산형 우산'이 등장해 비 오고 눈 오는 날의 필수품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미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 오는 날 머리에 쓸 물건으로는 돌려 말아 쓰기 좋은 '테누구이(手拭)'가 큰 활약을 했습니다.

눈 오는 날에는 머리에 감싸 한기를 막으며 눈길을 걸었고, 햇볕이 강한 여름에는 모자 대신 썼습니다. 그동안 삼베 재질이 주류였지만, 면 재질의 테누구이도 등장하며 널리 퍼졌습니다.

눈이 오지 않는 추운 날에는 목도리로도 쓸 수 있는 테누구이가 만능 아이템으로 서민들의 소중한 동료가 되었습니다.

옷과 머리는 다양한데, 발은 어떠했을까?

에도시대의 방한 대책은 의외로 다채로웠지만, 신발은 어땠을까요?

당시 신발이라 하면 게타(나막신), 조리, 와라지(짚신)가 주류였습니다. 시대와 용도에 따라 유행이 달랐는데, 게타는 에도 중기 이후에 등장했고 그 전에는 조리와 와라지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국시대의 농민들은 모두 맨발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앞서 에도시대 패션을 다룬 적이 있는데, 겨울철 대표 신발은 '게타(下駄)'로, 이(齒)가 살짝 높은 스타일이었습니다. 눈 오는 날에는 이 사이에 눈이 끼워 불편했지만, 눈이 발에 직접 닿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며…

패션은 역시 참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에도 사람들에게도 '얇은 옷이 멋(이키)이다', '데이(伊達) 얇은 옷'이라는 미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았고, 사계절 내내 맨발에 게타를 신었다고 합니다.

요시와라의 유녀들도 한겨울에 맨발로 지나갔다고 하니 말이 아닙니다.

한겨울에도 맨발에 미니스커트를 입는 요즘 젊은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에도시대를 생각하면, 당시 사람들의 추위에 대한 내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