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뛰어난 웅변과 설득력으로 의회를 움직여 미국을 제1차 세계 대전에 끌어들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역사는 조금 다릅니다. 윌슨은 전쟁 초기에는 중립을 고수하며 '우리를 전쟁 밖에 지켜준 사람(He kept us out of war)'이라는 구호로 재선에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중립에서参전으로, 운명을 바꾼 사건들
그러나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반복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1915년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으로 미국인 다수가 목숨을 잃었고, 이후에도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자 미국 내 여론은 점차 독일에 적대적으로 기울었습니다.
결정타는 1917년 초 영국이 가로채어 공개한 치머먼 전보였습니다. 독일 외무장관이 멕시코에 보낸 이 전보에는, 미국과의 전쟁 발발 시 멕시코가 독일 편에 서서 참전하면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 등 옛 영토를 되찾도록 돕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미국 사회는 분노했고, 중립 노선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1917년 4월 2일, 의회 연설
마침내 윌슨은 1917년 4월 2일 의회에 모여 특별 연설을 하고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세계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안전해야 한다(The world must be made safe for democracy)"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기며, 미국의 참전이 단순한 군사적 개입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사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의회에서는 수 주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몇 일 만에 선전포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상원은 4월 4일, 하원은 4월 6일에 각각 가결했고, 윌슨 대통령은 같은 날 서명함으로써 미국은 공식적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정리
요컨대 윌슨이 의회를 '설득'했다기보다는, 독일의 잠수함 공격과 치머먼 전보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미 여론과 정치적 분위기를 참전 쪽으로 기울게 만든 상황이었습니다. 윌슨은 그 흐름 위에서 명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미국의 참전을 확정지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