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미국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 암살 사건

제임스 가필드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에게는 이길 수 없을 만큼 공부를 잘하는 동급생이 있었는데, 가필드는 그 친구 집 불이 꺼질 때까지 매일 밤 공부하다 끝내 성적에서 그를 앞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근면과 성실함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해 온 인물이 바로 제20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필드는 취임한 지 반년 남짓한 시점에 암살당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미국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 암살 사건

가필드는 전임 대통령 헤이스와 마찬가지로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헤이스와 같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헤이스와 달리 가필드는 학업을 마친 뒤 16세에 선원으로 일했고, 병으로 그만두게 된 후에는 훗날 하이럼 대학교가 된 교회 설립 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윌리엄스 칼리지에 진학해 졸업하였고, 졸업 후에는 교사, 교수, 학장을 거치며 교육자로서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던 중 법률을 공부했고, 1859년 오하이오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북군 지휘관으로 참전해 눈부신 군공을 세웠습니다. 켄터키의 미들크릭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시카마가 전투에서의 용맹함으로 소장(少將)까지 올라섰습니다. 이러한 군 복무는 그의 명성을 높이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가필드는 연방 하원 의원으로서 정치 활동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때때로 부정부패 사건의 용의자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188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화려하게 당선됩니다.

암살

미국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 암살 사건

1881년 가필드는 암살당합니다. 범인은 찰스 기토(Charles Guiteau)라는 남성으로, 가필드의 선거 운동을 도왔던 인물이었습니다. 기토는 선거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 왔지만, 정작 자신에게 어떠한 관직도 주어지지 않자 원한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87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의 미국은 '도금 시대(Gilded Age)'라 불렸습니다. 돈이 곧 능력인 듯한 분위기가 팽배했고, 공직이 매매되는 염전제(spoils system)도 만연한 시절이었습니다. 가필드 역시 선거 과정에서 기토를 통해 유권자를 매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기토에게는 정신 질환의 병력이 있었고 그의 주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만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산업 자본가들과 연결이 깊었던 공화당에서 가필드만 예외였으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흥미로운 이론도 있습니다. 기토가 발사한 탄환이 몸속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의사들이 탄환을 찾으려다 장기를 손상시켰다는 것입니다. 가필드의 직접적인 사인은 출혈이 아니라 감염증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소독 개념이 널리 퍼져 있지 않아, 손을 씻지 않은 의사들이 비위생적인 기구로 상처를 반복해서 만졌고, 그 결과 치명적인 세균 감염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금속 탐지기를 들고 탄환 위치를 찾는 데 나서기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결국 가필드는 1881년 9월,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재임 기간은 겨우 6개월 남짓이었습니다. 범인 기토는 재판 끝에 1882년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가필드의 뒤를 이어 부통령 체스터 A. 아서가 제2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