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힐 전투, 실제로는 브리드힐에서 벌어지다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유명한 전투로 알려진 '벙커힐 전투'는 사실 이름과 달리 벙커힐이 아니라 브리드힐(Breed's Hill)에서 벌어졌습니다. 흥미롭게도 미국 측 병력은 한 번도 벙커힐을 점령한 적조차 없었습니다.
브리드힐을 선택한 이유
1775년 6월 16일 밤, 윌리엄 프레스콧(William Prescott) 대령이 이끄는 약 1,200명의 식민지 민병대는 참호를 구축하기 위해 찰스타운 반도에 도착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그들은 브리드힐이 보스턴 시내를 직접 내려다보는 훨씬 유리한 방어 위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반면 벙커힐은 북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어 보스턴을 감시하고 포격하기에는 전략적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이에 프레스콧 대령과 그의 부하들은 원래 계획을 과감히 수정하고, 방어에 훨씬 유리한 브리드힐을 요새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름의 혼란이 남긴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는 '벙커힐 전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당시 작전 명령에 벙커힐이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록 장소의 이름에는 혼란이 있었지만, 브리드힐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훈련이 부족한 식민지 군대가 영국 정규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독립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