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캐나다는 자국으로 오는 노예를 어떻게 여겼을까?

핵심 답변


오늘날의 캐나다는 1867년 연방으로 출범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보다 30여 년 전인 1834년, 캐나다가 속해 있던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연방 국가로서의 캐나다가 성립한 시점에는 노예가 강제로 끌려오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며, 오히려 자유를 찾아 캐나다로 건너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식민지 시대에는 노예제가 존재했습니다


‘노예가 캐나다 땅을 밟은 적이 없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17세기 초 프랑스가 세운 누벨프랑스(뉴프랑스) 식민지 때부터 아프리카계 노예와 원주민 노예가 존재했으며, 1763년 영국이 식민지를 넘겨받은 뒤에도 노예제는 한동안 유지되었습니다. 다만 북미의 다른 지역과 달리 농장 경제가 발달하지 않아 노예 수요 자체가 크지 않았고,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대영제국 최초의 폐지 입법


1793년 어퍼캐나다(오늘날의 온타리오) 의회는 새로운 노예 유입을 금지하고 기존 노예의 해방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반노예법(Act Against Slavery)’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대영제국 내에서 처음으로 노예제 폐지를 법제화한 조치였습니다. 이후 1807년 대영제국이 대서양 노예 무역을, 1834년에는 노예제 자체를 공식 폐지하면서 캐나다에서도 노예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자유의 종착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노예제가 사라진 캐나다는 미국 남부의 노예들에게 자유의 땅처럼 여겨졌습니다. 비밀리에 운영된 도망 노예 지원망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지하철도)’를 통해 19세기 중반까지 약 3만~4만 명의 흑인들이 캐나다로 피신했으며, 특히 1850년 미국의 엄격한 도망노예법이 통과된 이후 유입이 크게 늘었습니다. 당시 캐나다 사회는 이들을 노예가 아닌 자유민으로 받아들였고, 많은 이들이 온타리오와 노바스코샤 등지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결론


요컨대 연방 국가로서의 캐나다는 노예가 들어오던 시대와 시간적으로 크게 겹치지 않았습니다. 초기 식민지 시절에는 소규모의 노예제가 존재했지만, 캐나다는 대영제국 안에서 가장 먼저 폐지 입법을 이루었고, 이후에는 도망 노예들을 자유롭게 맞아들이는 ‘자유의 피난처’로 기능했습니다. 즉 캐나다가 마주한 대상은 강제로 끌려오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를 찾아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