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1861~1865)의 승패를 가른 1864년,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는 남부연합의 수도 리치몬드를 직접 공략하기 위한 대규모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이른바 오버랜드 전역(Overland Campaign)으로 불리는 이 작전에서 그랜트는 로버트 E. 리(Robert E. Lee) 장군이 지휘하는 북버지니아군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남진을 이어갔습니다. 그 여정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세 가지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스포츠실베이니아 코트하우스 전투 (Battle of Spotsylvania Court House)
1864년 5월 8일부터 21일까지 약 2주간 버지니아주 스포츠실베이니아에서 벌어진 전투로, 오버랜드 전역의 두 번째 대규모 교전이었습니다. 양측 모두 참호를 파고 들어가며 치열하게 맞섰고, 합계 약 10만 명에 달하는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그랜트군 진지를 향한 남군의 반격 과정에서 '피의 샛길(Bloody Angle)'이라 불리는 지점에서 무려 20시간 가까운 백병전이 이어져 남북전쟁 최고의 격전지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2. 노스애나 전투 (Battle of North Anna)
1864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노스애나 강 일대에서 벌어진 교전입니다. 리 장군은 역삼각형 형태의 교묘한 방어선을 구축해 북군이 분단되어 공격할 경우 각개격파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랜트는 리의 계획을 간파하고 무리한 정면 돌파를 피했으며, 양측의 소규모 충돌에 그친 채 전투는 결정적 결과 없이 종결되었습니다. 그랜트는 다시 우회 기동을 선택해 리 군의 남쪽 측면으로 이동했습니다.
3. 콜드하버 전투 (Battle of Cold Harbor)
1864년 5월 31일부터 6월 12일까지 이어진 이 전투는 오버랜드 전역의 마지막 대규모 교전이었습니다. 그랜트는 6월 3일 새벽 남군 방어선에 대한 정면 총공격을 감행했지만, 완벽하게 구축된 참호와 교차 화망 앞에서 단 몇 시간 만에 약 7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랜트는 훗날 회고록에서 이 돌격을 평생 지울 수 없는 후회로 꼽았으며, 실제로 이후 전쟁 내내 그는 이런 식의 정면 공격을 더 이상 명령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세 전투가 남긴 의미
스포츠실베이니아, 노스애나, 콜드하버의 세 전투에서 그랜트는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이전 북군 사령관들과 달리 그는 후퇴하지 않고 끊임없이 남하하며 리 군을 계속 몰아붙였다는 점에서 이 전역은 전략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그랜트는 제임스 강을 건너 피터즈버그를 포위했고, 이 포위전은 9개월간 이어지다 1865년 4월 리치몬드 함락과 남부연합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