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메리카 원주민은 북미에서 노예로 팔리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유럽 식민지 시대 내내 여러 지역에서 노예화되었으며, 그 규모와 잔혹함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식민지 초기부터 이어진 원주민 노예제
1492년 콜럼버스가 도착한 직후부터 카리브해 지역의 타이노족 등 원주민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강제 노동과 노예 상태에 놓였습니다. 엔코미엔다(encomienda) 제도는 명목상 '보호와 전교'를 조건으로 원주민에게 광산과 농장 노동을 강요한 사실상의 노예 제도였습니다.
영국 식민지에서의 원주민 노예
북미 동부 영국 식민지에서도 원주민 노예제는 만연했습니다. 1637년 피쿼트 전쟁 이후에는 생존자 수백 명이 버뮤다와 서인도제도로 팔려갔고, 1675~1676년 필립왕 전쟁(King Philip's War) 이후에는 수천 명의 원주민이 카리브해로 추방·매각되었습니다.
캐롤라나의 인디언 노예 무역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 사우스캐롤라나는 대규모 '인디언 노예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추산 3만~5만 명의 원주민이 포로로 잡혀 카리브해, 뉴잉글랜드, 남부 식민지로 팔려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족 간 분쟁이 조장되고 원주민 사회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노예제로 전환된 이유
그렇다면 왜 원주민 노예제가 아프리카 노예제에 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탈출의 용이성: 원주민은 자신들의 땅을 잘 알았기 때문에 도망치면 부족 사회로 돌아가거나 숨을 곳이 많았습니다.
- 전염병: 유럽인이 가져온 천연두·홍역 등으로 원주민 인구가 급감하면서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졌습니다.
- 정치적 고려: 원주민 부족은 중요한 교역 파트너이자 군사적 동맹 또는 위협이었기에, 식민 당국은 그들을 지나치게 적대시하는 데 신중해야 했습니다.
- 제도의 변화: 18세기 들어 아프리카계 노예제가 법적으로 정착하면서 원주민 노예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19세기까지 이어진 강제 노동
형식적인 노예제가 끝난 뒤에도 원주민에 대한 강제 노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스페인 선교소(mission) 체계와 19세기 미국의 원주민 기숙학교 제도는 원주민 아이들과 성인들에게 사실상의 강제 노동을 시켰으며, 19세기 중반 캘리포니아에서는 원주민 '도제(bound labor)' 제도가 합법적으로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결론
"아메리카 원주민은 노예가 되지 않았다"는 말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원주민은 식민지 시대 내내 노예화되었고, 아프리카 노예제가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될 뿐입니다. 북미 노예제의 역사는 흑인 노예제만이 아니라 원주민 노예제까지 포함하는 훨씬 더 넓은 이야기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