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1880년 아리카 봉쇄 돌파 작전 — 페루 코르벳함 '우니온'의 기적적인 항해

"봉쇄선을 돌파하고, 화물 하역 작전에 지장을 주지 않은 채 전투에 임했으며, 무엇보다 두 번째 봉쇄 돌파까지 성공해내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다."라고 역사가 호르헤 바사드레(Jorge Basadre)는 평가했습니다.


1880년 3월 17일, 앙가모스 해전에서 생존한 페루 해군의 코르벳함 우니온(Unión)은 칠레 함대를 상대로 이중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바로 8시간 만에 아리카 항구의 해상 봉쇄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입니다.

당시 페루 도시 아리카는 장갑함 코크란(Cochrane), 아마조나스(Amazonas), 수송선 마티아스 쿠시뇨(Matías Cousiño), 그리고 칠레 국기를 게양한 모니터함 와스카르(Huáscar)에 의해 철저한 해상 봉쇄에 놓여 있었습니다.

코르벳함 우니온호는 1880년 3월 12일, 칠레의 침공에 대비하던 남부 페루군을 위한 보급품을 실은 증기선 탈리스만(Talismán)호와 함께 칼라오(Callao)항을 출항했습니다. 마누엘 안토니오 비야비센시오(Manuel Antonio Villavicencio) 사령관은 배에 구두 상자 37개, 흰 캔버스 자루 39개, 단추 190개가 든 상자 1개, 완전한 기관총 2정이 든 상자 5개, 레밍턴 소총용 탄약 100,000발이 든 상자 100개를 싣고 알리안사(Alianza) 어뢰정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1880년 아리카 봉쇄 돌파 작전 — 페루 코르벳함  우니온 의 기적적인 항해UNION CORVETTE
페루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우니온'

"우니온호는 불을 끄고 아리카 항에 조용히 진입한 뒤, 해안 바로 근처까지 담대하게 항해하여 적은 물론 항구 수비대마저 놀라게 했습니다. 코크란호와 아마조나스호는 와스카르호와 합류하여 코르벳함과 모니터함 만코 카팍(Manco Cápac)에게 포격을 퍼부었습니다. 오전부터 오후 2시까지 양측은 모로(Moro) 포대의 지원을 받았으며, 우니온호가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후안 호세 라토레(Juan José Latorre)는 와스카르호와 아마조나스호의 사령관에게 신호를 보내, (자신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니온호에 대해 결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밤에 위치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오후 5시가 넘자, 코르벳함은 정박지를 떠나 적들이 예상했던 북쪽이 아닌, '환호와 열렬한 갈채 속에서' 남쪽으로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야비센시오 사령관에 따르면, 항구를 떠나며 통과해야 하는 모로 등 인근 해안 곳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함선을 배웅했습니다. 칠레 함선들은 밤이 되자 추격에 나섰지만, 끝내 붙잡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데이터 | 코르벳함 우니온 제원

우니온 코르벳함은 1865년에 건조된 함선으로, 철과 구리로 보강된 목재 선체를 갖추고 있습니다. 배수량은 2,066.66톤이며, 무장은 현측당 6문씩 배치된 70파운드 보루즈(Voruz) 전장식 강선포 10문, 함수(船首)의 암스트롱(Armstrong) 70파운드포 2문, 파롯(Parrott) 30파운드포 2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추진 체계는 프로펠러와 병행 혼합 방식으로, 최대 13노트(knots)의 속도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호르헤 바사드레(Jorge Basadre), 『페루 공화국의 역사』 9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