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비 두 팔마레스(Zumbi dos Palmares, 1655~1695)는 브라질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도망 노예 공동체였던 팔마레스 킬롬부(Quilombo dos Palmares)의 마지막 지도자이자, 가장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인물입니다.
주비는 뛰어난 전사로서의 능력, 용기, 리더십, 그리고 군사 전략에 대한 깊은 통찰 덕분에 킬롬보 동료들의 깊은 존경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식민지 시대 브라질의 노예제 철폐를 위해 평생을 싸웠습니다. 다만 그의 통치 방식은 매우 엄격하고 전제적이었다는 기록도 전해지며, 팔마레스 내부에는 온화한 형태의 노예제가 존재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비는 백인의 흑인 지배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불굴의 정신은 그를 브라질 역사상 흑인 해방의 가장 위대한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비 두 팔마레스의 생애
주비는 팔마레스의 지도자 강가 줌바(Ganga Zumba)의 조카였습니다. 강가 줌바는 군사적 전통을 지닌 부족인 자가(Jaga)족, 혹은 임방갈라(Imbangala)족 출신의 공주 아콜투네(Aqualtune)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그가 단다라(Dandara)와 결혼하여 그녀가 자신과 함께 전장에서 싸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비는 약 1655년경 페르남부쿠 카피타니아의 세라 다 바리가(Serra da Barriga) 지역에 있던 팔마레스 킬롬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현재 브라질 알라고아스 주의 우니앙 두스 팔마레스(União dos Palmares)에 해당합니다.
여섯 살 무렵, 주비는 브라스 다 로카 카르도주(Brás da Rocha Cardoso)의 원정대에 포로로 잡혀 포르투 칼보의 안토니우 멜루(Antônio Melo) 신부에게 맡겨졌습니다.
이후 그는 '프란시스(Franci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포르투갈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가톨릭 신앙으로 세례받기 위한 교리교육도 이수했습니다.
열 살에는 이미 포르투갈어와 라틴어에 유창했으며,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탈출하여 팔마레스 킬롬보로 돌아왔습니다.
몇 년 후인 1675년, 주비는 포르투갈군으로부터 킬롬보를 방어하는 격전에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그는 자가족 전사로서의 뛰어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25세가 된 주비는 삼촌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1680년 학자들에 따르면 암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가 줌바를 대신하여 팔마레스의 지도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식민지 정부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일관되게 저항과 대결이었습니다. 결국 포르투갈 당국은 도밍구스 조르제 벨류(Domingos Jorge Velho)와 베르나르두 비에이라 드 멜루(Bernardo Vieira de Melo) 등 당대 최고의 탐험대 지휘관들을 고용하기에 이릅니다.
1694년, 이들은 팔마레스의 수도 '세르카 두 마카코(Cerca do Macaco)'를 공격하여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지도자 주비 역시 부상을 입었지만, 간신히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흥미로운 사실
영웅이 채택한 이름인 '주비(Zumbi)' 또는 '잠비(Zambi)'는 킴분두어(kimbundu)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령·망령·요정과 같은 영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비 두 팔마레스의 죽음
1695년 11월 20일, 주비는 부하 대위 안토니우 소아르스(Antônio Soares)의 밀고로 인해 적에게 발각되어 처형당했습니다. 그의 나이 마흐 살이었습니다.
주비를 물리치고 살해한 대위는 포르투갈 왕 페드루 2세(D. Pedro II)로부터 오만 레이스(reis)의 상금을 하사받았습니다.
주비의 머리는 잘려 소금에 절임 처리된 뒤 총독 멜루 이 카스트루(Melo e Castro)에게 보내졌고, 주비가 불멸의 존재라는 신화를 종식시키겠다는 목적으로 공공 광장에 공개 전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뒤집혔습니다. 그가 순교한 날인 11월 20일은 오늘날 '흑인 의식의 날(Dia da Consciência Negra)'로 지정되어 매년 기념되고 있습니다.
주비 두 팔마레스를 기리는 헌정
주비 두 팔마레스는 브라질 흑인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여러 시설이 남아 있습니다. 상파울루에는 그의 이름을 건 주비 두 팔마레스 대학(FAZP)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또한 2005년에 개항한 마세이오 국제공항(Maceió/AL)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바 스쿨 빌라 이자벨(Vila Isabel)이 '키좀바, 인종의 축제(Kizomba, Festa da Raça)'라는 주제로 주비 두 팔마레스를 헌정했고, 이 주제로 스쿨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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