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보니파시우 드 안드라다 이 시우바(José Bonifácio de Andrada e Silva)는 브라질의 과학자이자 정치가, 국가 지도자입니다. 그의 사상과 정치적 영향력은 브라질 독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오늘날까지 '독립의 대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훈장을 받은 조제 보니파시우
교육과 학문 경력
그는 1763년 상파울루주의 항구 도시 산투스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0세에 포르투갈의 코임브라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법학, 철학, 광물학을 전공하고 졸업했습니다. 1790년에는 포르투갈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파리에서 연구하고, 유럽 각지를 과학 탐사하며 여행하도록 파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여행을 통해 그는 유럽의 주요 광산들과 대륙에서 급성장하던 철강 산업을 직접 접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동안 보니파시우는 광물 생성, 농업, 정치 분야에 관한 여러 저서를 출간했으며, 6,000권이 넘는 장서를 모은 방대한 개인 도서관을 구축했습니다. 그는 코임브라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리스본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1790년 리스본에서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으며, 이후 스스로 인정한 사생아 딸 한 명도 두었습니다.
브라질 귀환과 정치 경력
59세의 나이로 브라질로 돌아온 그는 국내에 공장을 세우고 천연자원 개발을 합리화하려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의 설득으로 리스본 입헌 의회(코르테스)에 참여하기 위해 상파울루주 대표 의원으로 출마하게 됩니다.
프리메이슨이었던 그는 포르투갈 지배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모이던 '동방 로지(Loja do Oriente)'의 그랜드 마스터를 맡았습니다. 또한 브라질 독립을 추진하기 위한 비밀결사 '아포스톨라두(Apostolado)'를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는 브라질 영토의 통합성을 해칠 수 있는 어떠한 민중 봉기나 반란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돔 페드루가 섭정으로 있던 시절, 보니파시우는 스페인령 아메리카 국가들처럼 브라질 영토가 분열되지 않으려면 오직 그의 지도력만이 필요하다고 확신시켰습니다. 나아가 섭정의 존재가 브라질인들 간의 내전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상파울루 의원들의 지지를 돔 페드루가 이끄는 독립 운동으로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국무회의의 일원으로서, 돔 페드루에게 포르투갈 귀환을 명령한 결정에 대해 돔 레오폴디나와 함께 반대했습니다. 브라질 독립 이후에는 돔 페드루 1세에 의해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어, 여러 조약을 체결하고 각국으로부터 독립 승인을 받아내는 외교를 펼쳤습니다.
당시 의원이기도 했던 보니파시우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아우르는 사상으로 브라질 헌법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그는 옛 포르투갈 식민지의 영토 통합성을 보장하기 위해 브라질이 반드시 입헌군주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돔 페드루 1세는 황제의 권한이 헌법에 규정된 범위보다 커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와 노예제 반대 입장을 문제 삼는 정적들의 압박이 겹치면서, 1823년 돔 페드루 1세는 보니파시우와 그의 가족을 프랑스로 추방합니다.
이 처분은 돔 페드루 1세가 포르투갈 왕위를 쟁취하기 위해 브라질 황제 자리를 내놓기로 결정하면서 종식됩니다. 그는 보니파시우를 용서하고 자신의 자녀들의 후견인으로 임명했습니다. 이후 건강이 크게 악화되고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해진 보니파시우는 니테로이로 물러나 1838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조제 보니파시우, 조국의 기초. 작가: 에두아르두 지 사(Eduardo de Sá)
주요 사상
자유주의자이자 입헌군주제의 옹호자였던 보니파시우는 브라질의 발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구상을 지지했습니다.
- 원주민(인디오)의 문명화 추진
- 노예제의 단계적 폐지
- 실업(기술) 교육 학교 설립
- 토지 개혁
- 외국 차입금 금지
- 수도를 상프란시스쿠 강 상류 지역의 도시로 이전
흥미로운 사실
- 리튬을 함유한 페탈라이트(petalite)와 스포듀멘(spodumene) 등 네 가지 신종 광물을 발견했습니다.
- 엄격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룬두(lundu)를 비롯한 아프리카 계열 음악과 춤을 즐기는 면모도 있었습니다.
- 브라질 여러 도시에 그를 기리는 거리와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 제40석의 수호자(파트론)입니다.
- 국가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독립의 대가(Patriarca da Independência)'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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