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워싱턴 루이스: 브라질 구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

워싱턴 루이스(Washington Luís)는 브라질 역사에서 '구공화국(Old Republic)'이라 불리는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워싱턴 루이스: 브라질 구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워싱턴 루이스는 자유식품시장(무료 식량 공정)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생애

워싱턴 루이스는 1869년 10월 26일 리우데자네이루주 마카에(Maca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파울리스타(상파울루 출신)로 여겼으며, 변호사이자 역사가로 활동하는 한편 상파울루 공화당(PRP)에서 정치 경력을 쌓았습니다.

가난한 가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페드루 2세 학교(Colégio Pedro II)에 기숙사생으로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그는 행정 관료제 개선을 위한 기법과 과학적·기술적 경영 방식의 발전을 장려하고, 역사학·박물관학·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를 적극 지원한 '현대적인' 대통령으로 브라질 정치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워싱턴 루이스는 금융 부문을 위한 통화 및 환율 안정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부는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 위기는 커피 산업을 거의 파괴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그는 연방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또한 그는 테넨치스모(청년장교 운동)와 노동 운동, 이탈한 과두세력들의 반대, 그리고 도시 중산층의 시위로 인해 정치적으로 크게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결국 그는 1930년 10월 24일,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 이른바 '1930년 혁명'으로 축출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미국과 유럽으로 망명했으며, 1957년에야 브라질로 돌아왔고 같은 해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워싱턴 루이스의 정치 경력

워싱턴 루이스는 1897년 바타타이스(Batatais) 시의회 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1898년에는 같은 도시의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상파울루 공화당(PRP)에 합류하여 1904년 주 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906년에는 상원을 떠나 상파울루주 법무·공안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브라질 북서부 철도 노동자들과 상파울루 서부 개척민들을 향한 원주민들의 공격 문제 등 여러 현안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1914년 1월 15일에는 상파울루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시장 재임 시절 그는 무료 식량 공정(자유식품시장)을 설립했고, '3G'라 불리는 세 가지 위기, 즉 제1차 세계대전(Guerra), 스페인 독감(Gripe, 1918), 1917년 노동자 파업(Greve)에 맞서야 했습니다. 아울러 상파울루 시내 도로 약 200킬로미터를 건설 및 보수하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1920년 5월 1일에는 상파울루주 주지사에 취임하여, 도로 공사 건설을 통해 주 내륙 지역 주민들을 위한 발전 방향을 마련했습니다.

연방 상원 의원을 지낸 후, 워싱턴 루이스는 1926년 3월 1일 브라질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의 정부는 국제 커피 위기와, 1929년 10월 뉴욕 증권거래소 붕괴로 촉발된 국제 금융 위기에 맞서 싸우는 과정으로 특징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