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빌라리카 반란: 포르투갈 식민 지배에 맞선 브라질 자유 항쟁

빌라리카 반란(Vila Rica Revolt)은 지도자인 필리페 두스 산투스(Filipe dos Santos)의 이름을 따 '필리페 두스 산투스 반란'으로도 불립니다. 1720년에 일어난 이 운동은 브라질의 경제적·사회적 개혁, 특히 공화정 체제의 수립을 통해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발생 시기와 장소

반란은 당시 '빌라리카'로 불리던 오루프레투(Ouro Preto)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도시는 대규모 금광이 있던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반란이 일어난 1720년(18세기)은 브라질의 주요 경제 활동이 금 채굴이었던 '황금 순환기(Gold Cycle)'로 불리는 시기였습니다.

참고로 72년 후인 1792년에는 브라질 최대 규모의 식민지 해방 운동이었던 '미네이라 음모(Inconfidência Mineira)'의 지도자 티라덴치스(Tiradentes)가 처형되었으며, 마침내 1822년 브라질 독립이 선포됩니다.

반란의 원인

이 운동의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착취'입니다. 반란 세력은 특권을 누리던 포르투갈 왕정의 타도를 목표로 했으며, 그 특권은 다음과 같은 폭압적인 행위들을 통해 유지되었습니다.

'퀸투', 오분의 일세

금 채굴로 얻은 수익의 20%, 즉 '퀸투(o quinto)'라고 알려진 세금이 포르투갈 왕실에 납부되었습니다. 과중한 세금 징수는 민중 반란을 촉발한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였습니다.

주조소 및 조폐국 설립

주조소(Casa de Fundição)는 포르투갈 왕실이 세금을 징수하고 금을 관리하며, 브라질에서 발견된 모든 금에 대한 독점권을 유지하던 곳이었습니다.
금광 소유주들은 이곳을 거치지 않은 금을 판매할 수 없었고, 상인들 역시 왕실 몫의 이윤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장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봉기와 결과

포르투갈 출신 농부였던 필리페 두스 산투스는 열정적인 연설로 민심을 얻어 반란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반군은 빌라리카를 점령하고 주조소의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며칠 후, 아수마르 백작(Conde de Assumar) 총독은 반군과 협상을 시도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반군을 진정시켰지만, 이는 반군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1,500명의 병사를 소집해 반군을 체포했습니다. 필리페 두스 산투스는 재판을 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1720년 7월 15일 교수형에 처해 그의 시신은 공개 광장에서 사지로 찢기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필리페 두스 산투스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나는 자유를 위해 죽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내 말을 지킨다."

반군들이 가차 없이 처벌당하고 지도자가 처형되면서, 반란의 목표는 결국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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