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칼리즘(열대주의, Tropicália)은 1967년부터 1968년까지 브라질에서 예술, 특히 음악 분야를 중심으로 일어난 아방가르드 문화 운동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혁명적 운동으로 평가되는 트로피칼리즘은 보사노바가 지닌 지성주의적 경향에서 한 걸음 물러나, 대중문화·삼바·팝·록·사이키델리아 등 다양한 요소를 브라질 음악에 접목하고자 했습니다.
트로피칼리스타들이 펼친 이 개방적이고 융합적이며 혁신적인 미학 실험은 브라질 대중음악(MPB)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으며, 나아가 브라질 고유의 현대성을 탐구하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이끈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와 질베르투 질(Gilberto Gil)을 비롯해 나라 헤아옹(Nara Leão), 톰 제(Tom Zé), 갈 코스타(Gal Costa), 밴드 오스 무탄테스(Os Mutantes – 히타 리, 아르날두 바프치스타, 세르지우 디아스), 시인 토르콰투 네투(Torquato Neto), 편곡가 호제리우 두프라트(Rogério Duprat), 작사가 카피낭(Capinam), 조르제 벵(Jorge Ben), 마리아 베따니아(Maria Bethânia) 등이 핵심 인물로 꼽힙니다.
트로피칼리즘의 역사적 배경
당시 브라질은 1964년 군사 쿠데타, 언론 검열, 파업, 학생 운동 등 격랑의 시기를 겪고 있었고, 이러한 혼란은 결국 국가 전체가 독재 체제로 들어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보사노바가 쇠퇴한 이후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한 MPB(브라질 대중음악) 속에서, '트로피칼리스타'로 불린 예술가들은 브라질 문화계의 해방과 변화를 목표로 하나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문학과 조형예술 분야의 콘크레티즘(구체주의) 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음악에서는 다양한 리듬의 융합에 더해, 일렉트릭 기타의 멜로딕한 사운드를 곡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이 큰 특징입니다.
트로피칼리즘의 공식적인 출발점은 1967년 TV 헤코드(TV Record)가 주최한 제3회 브라질 대중음악 페스티벌이었습니다. 카에타누 벨로주가 부른 "알레그리아, 알레그리아(Alegria, Alegria)"와 질베르투 질의 "도밍고 누 파르케(Domingo no Parque)"가 무대에서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운동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약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트로피칼리즘은 대중음악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브라질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히피족과 유사하면서도 사이키델리아적 감각과 다양한 색채의 혼합이 더해진 의류 스타일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1968년 군사 독재 정권이 질베르투 질과 카에타누 벨로주를 체포하면서 트로피칼리스트 운동은 막을 내립니다. 이후 1969년 카에타누가 망명길에 오르면서 운동은 완전히 종결되었습니다.
트로피칼리아 운동의 대표곡
트로피칼리스타 운동에서는 수많은 곡들이 두각을 나타냈으며, 그중 일부는 TV 헤코드 MPB 페스티벌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 (1968) – 카에타누 벨로주
- "알레그리아, 알레그리아(Alegria, Alegria)" (1967) – 카에타누 벨로주
- "아트라스 두 트리우 엘레트리코(Atrás do Trio Elétrico)" – 카에타누 벨로주
- "에 프로이비두 프로이비르(É Proibido Proibir, 금지를 금한다)" (1968) – 카에타누 벨로주
- "도밍고 누 파르케(Domingo no Parque, 공원의 일요일)" (1967) – 질베르투 질
- "에세 아브라수(Esse Abraço, 그 포옹)" (1968) – 질베르투 질
- "상파울루, 메우 아모르(São Paulo, Meu Amor)" (1968) – 톰 제
- "파르케 인두스트리알(Parque Industrial, 산업공원)" (1968) – 톰 제
- "나웅 이덴티피카두(Não Identificado, 신원 미상)" (1969) – 갈 코스타
- "마에 코라젱(Mãe Coragem, 용감한 어머니)" (1968) – 갈 코스타
- "베이비(Baby)" (1968) – 갈 코스타
- "트로피칼리아 오우 파니스 에트 치르첸세스(Tropicália ou Panis et Circenses)" (1968) – 무탄테스
- "미제레레 노비스(Miserere Nobis)" (1968) – 무탄테스
- "바트 마쿰바(Bat Macumba)" (1968) – 무탄테스
- "미냐 메니나(Minha Menina, 내 소녀)" (1968) – 무탄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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