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역사에서 마이오리다데 쿠데타(Golpe da Maioridade), 즉 '성년 조기 선언'은 1840년 7월 23일 당시 14세였던 페드루 2세(D. Pedro II)의 황제 즉위를 보장한 정치적 사건입니다.
성년 연령을 앞당긴 이 조치는 브라질이 섭정들에 의해 통치되던 섭정 시대(1831~1840)를 종식시키려는 자유당의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초대 황제 페드루 1세, 즉 페드루 2세의 아버지가 제위에서 물러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왕위 계승자는 겨우 5세에 불과했습니다.
그리하여 '페드루 지 알칸타라 주앙 카를루스 레오폴두 살바도르 비비아누 프란시스쿠 하비에르 지 파울라 레오카디우 미겔 가브리에우 하파에우 곤자가 지 브라간사 이 부르봉'(페드루 2세의 본명)은 법적으로 성년으로 선언되었고,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랐습니다.

브라질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황제, 페드루 2세
마이오리다데 쿠데타의 목표
성년 조기 선언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라질에 정치적 안정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제1제국 시대(1822~1831)부터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혼란은 섭정 시대(1831~1840)까지 이어졌습니다.
1822년에 시작된 제1제국 시대의 페드루 1세는 권력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는 황제였고, 이는 그를 지지했던 세력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에서 도앙 주앙 6세가 사망하자 페드루 1세는 포르투갈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브라질과 포르투갈 사이에서 양립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결국 페드루 1세는 브라질 제위에서 퇴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후계자인 페드루 2세는 불과 5세의 어린아이였습니다. 이로 인해 브라질은 섭정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섭정들은 서로 다른 원칙을 내세우던 자유당과 보수당 등 정치 세력의 대립 속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이러한 권력 다툼은 파라포스 전쟁(Guerra dos Farrapos), 카바나젱(Cabanagem), 발라야다(Balaiada), 사비나다(Sabinada) 등 일련의 대규모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이오리다데 쿠데타의 배경과 원인
당시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불안정이 강력한 지도자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1824년 헌법은 황제가 18세에 이르러야 성년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헌법 제121조).
이에 자유당은 권력을 다시 중앙집권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성년 연령을 앞당기는 안건을 입법부인 입법의회에 세 차례에 걸쳐 상정했습니다.
동시에 안토니우 카를루스 지 안드라다 이 실바(Antônio Carlos de Andrada e Silva)가 이끄는 '마이오리다데 클럽(Clube da Maioridade)'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전략은 황제의 성년 연령을 낮춰,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페드루 2세가 브라질의 지도자로 나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페드루 2세의 통치는 브라질 제2제국 시대의 개막을 알렸습니다. 제2제국은 1840년 7월 23일부터 공화정 수립, 즉 '공화국 선포'로도 알려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1889년 11월 15일까지 약 49년간 지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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