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페테르부르크 전투는 왜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아닌가?

미국 남북전쟁에서 페테르부르크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테르부르크가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남북전쟁 최장급 공성전의 종결

첫 번째 이유는 남북전쟁 기간 중 가장 긴 공성전 중 하나였던 페테르부르크 공방전(1864년 6월 ~ 1865년 4월)을 마무리 지었다는 점입니다. 약 10개월에 걸친 이 공성전은 양측이 참호를 파고 대치하는 극도로 소모적인 양상을 보였으며,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예고하는 듯한 전투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 리치먼드 함락과 애포매톡스 항복의 결정적 계기

두 번째 이유는 페테르부르크의 최종 함락이 인근의 훨씬 유명한 도시이자 남부동맹의 수도였던 리치먼드의 운명을 좌우했다는 점입니다. 페테르부르크 방어선이 붕괴하자 리치먼드 역시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었고, 로버트 E. 리 장군이 지휘하는 남군은 버틸 명분과 물자를 모두 잃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실질적인 종결은 페테르부르크 함락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8일 뒤인 1865년 4월 9일 애포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리 장군이 북군의 율리시스 S. 그랜트 사령관에게 항복하면서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요컨대 페테르부르크의 함락은 남부동맹의 몰락을 재촉한 결정적 발판이었지만, 전쟁을 끝낸 직접적인 원인은 리 장군의 애포매톡스 항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테르부르크는 '전쟁의 끝'이 시작된 장소이지, 전쟁을 끝낸 장소 자체는 아니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