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과 멸시로 시작된 시선
미국 독립전쟁(1775~1783) 당시 미국 혁명군이 구사한 게릴라전은 처음에 영국군에게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정규전과 엄격한 대열 전술을 자랑하던 세계 최강의 영국 육군에게, 숲속에서 벌어지는 기습과 매복은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비정상적인 전투 방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영국 장교들은 적이 정면에서 대열을 이루고 맞서 싸우지 않고, 사격 후 즉시 사라지는 히트 앤 런(hit-and-run) 전술을 사용하는 것을 겁쟁이적이고 명예롭지 못한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18세기 유럽 전쟁 관습에 익숙했던 그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전통 전술의 한계에 부딪히다
문제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영국군의 전략과 전술은 넓은 평야에서 훈련된 병력이 기동하며 정면 교전하는 전통적인 야전 전투를 위해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미 대륙의 울창한 숲과 험준한 지형, 그리고 지역 민병대(militia)의 비정규전은 이러한 전술을 무력화했습니다. 렉싱턴·콩코드 전투(1775년)에서 이미 영국군은 행군 도중 은신처에서 쏘아오는 총탄에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후에도 '늪지의 여우'로 불린 프랜시스 마리온 같은 게릴라 지휘관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렸습니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실감한 위력
전쟁이 길어지면서 영국군은 게릴라전이 미국 독립 운동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대칭 전술을 활용한 비정규전이 보급선을 차단하고 소부대를 고립시키며 영국군의 작전 전반을 심각하게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특히 영국군을 좌절시킨 것은 게릴라 부대의 은폐 능력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농부나 상인으로 살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무기를 들고 나타나는 민병대는, 군복을 입지 않은 탓에 적과 민간인을 구분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는 영국군이 아무리 병력과 화력에서 우위를 점해도 결정적인 승부를 내기 힘든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영국군의 대응 노력과 그 한계
영국군도 가만히 있지만 않았습니다. 반게릴라(counter-guerrilla) 전략을 도입하고, 요충지를 통제하기 위해 주둔지(garrison)와 방어 거점을 구축하며 지역 장악에 나섰습니다. 또한 충성파(왕당파) 민병대를 조직해 대항하는 방식도 활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릴라전은 전쟁 내내 영국군의 골칫거리로 남았습니다. 광활한 대륙을 통째로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주요 도시를 점령해도 내륙 지역의 저항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소모전의 누적은 미국이 끝까지 저항하여 결국 독립을 쟁취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결론
요약하자면, 영국은 처음에 게릴라전을 비겁하고 명예롭지 못한 전쟁 방식으로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그 효과성과 자신들의 군사 작전에 가하는 도전을 냉정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낯선 전장에서의 비정규전은 대영제국의 패배를 부른 핵심 변수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