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투쟁: 빈곤에서 잉카 정복까지 극복한 시련들

개요

프란시스코 피사로(c. 1476~1541)는 잉카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conquistador)입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 뒤에는 끊임없는 투쟁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출신에서 시작해 신대륙 최강의 제국을 무너뜨리기까지, 피사로가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초기의 고난

빈곤: 피사로는 스페인 트루히요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돼지치기와 양돈업에 종사해야 했습니다.

서자 출신: 피사로는 사생아로 태어났고, 이는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 커다란 낙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출신 배경 때문에 그는 사회적 인정과 출세의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페루 정복 과정에서의 어려움

군사 경험 부족: 피사로는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고, 페루 원정을 이끌기 전까지 대규모 전투에 참여한 경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미숙함은 원정 초기 여러 차례의 좌절과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소수의 병력: 피사로의 원정대는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해 잉카 대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였습니다. 그는 기지와 외교적 술책, 그리고 현지 원주민 부족들과의 동맹을 통해 이러한 열세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질병: 피사로와 그의 부하들은 천연두와 말라리아 같은 질병에 자주 시달렸습니다. 이러한 질병들은 정복자들의 체력을 약화시켰고, 잉카 제국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험난한 지형: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산악 지대와 페루의 광활한 사막은 원정대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거친 지형 탓에 스페인군은 보급품 수송과 병력 이동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잉카의 저항: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는 처음에 스페인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피사로의 항복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아타우알파의 저항은 1532년 카하마르카 전투로 이어졌고, 이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잉카 황제를 포획하는 데 성공하며 결국 잉카 제국을 무너뜨리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개인적인 시련

건강 문제: 피사로는 평생 통풍과 관절염을 비롯한 다양한 건강 문제로 고통받았습니다. 이러한 질환들은 그가 부대를 지휘하고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배신: 피사로는 여러 차례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디에고 데 알마그로를 비롯한 일부 동료 정복자들은 피사로가 정복의 전리품을 공정하게 나누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스페인 정복자들 사이의 분쟁과 내전으로 번졌습니다.

죽음: 1541년, 피사로는 디에고 데 알마그로 소(小)가 이끄는 음모자들에 의해 리마에서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시대를 상징하는 한 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