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스페인은 16세기 잉카 제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황금과 은, 보석 등 귀중품을 약탈했습니다. 잉카 문명이 수백 년에 걸쳐 축적한 방대한 부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정복자들의 손에 넘어갔으며, 그 여파는 잉카 사회 전반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쿠스코 약탈: 도시에서 뜯어낸 황금
1533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함락시키자, 그와 그의 부하들은 도시를 체계적으로 약탈했습니다. 태양신전(코리칸차)을 비롯한 신전과 궁전의 황금 장식들이 모두 걷어졌고, 심지어 건물 벽면과 석재 틈새까지 뜯어냈다고 전해집니다. 잉카인들은 황금을 '태양의 땀'이라 부르며 종교적·상징적 가치를 두었지만, 스페인인들에게 그것은 그저 주조하고 운반할 수 있는 귀금속일 뿐이었습니다.
아타우알파의 몸값: 방 하나 가득 찬 황금
1532년 카하마르카에서 포로로 잡힌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Atahualpa)는 자유를 대가로 거액의 몸값을 제안했습니다. 바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황금과 그 두 배에 달하는 은이었습니다. 제국 전역에서 황금 공예품이 끌려왔고, 스페인인들은 이를 며칠에 걸쳐 꼼꼼히 측정하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몸값을 지급한 후에도 아타우알파는 1533년 조작된 혐의로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황금 수송대와 잉카의 저항
약탈한 보물을 페루에서 파나마를 거쳐 스페인 본토로 운송하는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안데스 산맥을 넘던 황금 수송대는 여러 차례 잉카 저항 세력의 매복 공격을 받았고, 스페인 측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편 같은 시기 카하마르카에서 벌어진 기습 전투는 피사로가 소수의 병력으로 아타우알파를 생포하면서 스페인 정복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이후의 원정과 계속된 약탈
잉카 제국 정복이 진행되는 내내 스페인인들은 주요 도시는 물론 작은 마을과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황금과 각종 자원을 수탈했습니다. 신전과 무덤, 저장고가 주요 표적이 되었고, 보물을 숨긴 잉카인들에게는 가혹한 고문과 강제 노역이 뒤따랐습니다. 일부 보물은 오늘날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채 안데스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잉카 문명에 남긴 상흔
이러한 약탈은 잉카 문명의 막대한 부를 사실상 고갈시켰습니다. 유럽으로 흘러간 황금은 스페인 왕실의 재정을 충당했고, 유럽 경제에는 물가 혁명이라 불리는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반면 잉카 사회는 종교적 상징과 문화유산을 잃었고, 질병·전쟁·강제 개종과 더불어 빠른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