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영국이 실효 지배 중인 말비나스 제도(포클랜드 제도)와 남극 지역을 아르헨티나의 '국가적 대의'이자 '국민적 꿈'으로 격상시킨 인물은 후안 페론 본인이 아니라, 그의 아내였던 에바 페론, 즉 '에비타'였습니다.
에바 페론이 남긴 말비나스 유산
에바 페론은 1950년대 초 공식 연설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말비나스 제도의 아르헨티나 반환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영토 요구를 넘어, 이 문제를 민족적 긍지와 연결된 감성적 구호로 만들어 대중 속에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의 것"이라는 슬로건이 국민적 열정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에바 페론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분쟁의 역사적 배경
아르헨티나의 말비나스 주권 주장은 19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1833년 영국이 해당 제도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한 이후, 이 문제는 한동안 조용한 외교적 쟁점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후안 페론 집권기(1946~1955)에도 정부 차원의 입장은 유지되었지만, 이를 대중 운동의 구체로 바꾼 것은 에바 페론이었습니다.
남극 문제와의 연결
흥미롭게도 후안 페론 정부는 1946년경 아르헨티나 남극 영토에 대한 공식적 주권 선언을 통해 남극 문제를 법제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다만 이를 국민 감정의 문제로 끌어올려 '국가적 꿈'의 반열에 올린 것은 에바 페론의 탁월한 대중 동원 능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전개
에바 페론이 심은 이 민족주의적 서사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82년 아르헨티나 군부는 말비나스 점령을 감행했고, 이는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아르헨티나가 패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헌법에 말비나스 회복이 명시될 만큼 이 문제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핵심적인 국가 의제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말비나스 문제를 단순한 '영토 분쟁'에서 '국민 모두의 염원'으로 바꿔 놓은 결정적 계기는 에바 페론의 정치적 카리스마과 대중 소통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