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러더퍼드 B. 헤이즈를 남부가 마침내 받아들인 이유, 1877년 타협의 전말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낳은 선거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화당 후보 러더퍼드 B. 헤이즈(Rutherford B. Hayes)와 민주당 후보 새뮤얼 틸던(Samuel Tilden) 사이에서 선거 결과 분쟁이 벌어졌고, 결국 이른바 '1877년 타협(Compromise of 1877)'이라 불리는 밀약을 통해 헤이즈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남부인들은 어떤 조건 앞에서 헤이즈의 대통령직을 받아들였을까요?

헤이즈 대통령직을 위한 핵심 타협 조건

1. 연방군의 남부 철수

남부 민주당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연방군의 철수였습니다. 재건 시대 내내 남부에 주둔하던 연방군이 물러나면서, 남부 주들은 오랜만에 자율적인 통치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2. 남부 지역 개발 지원

헤이즈는 남부의 강과 항만 개선 사업에 대한 연방 보조금을 승인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는 낙후된 남부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투자로, 남부 지도자들에게 큰 설득력을 가졌습니다.

3. 경제 지원

아울러 헤이즈는 남부 경제 회복을 위한 연방 차원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는 남북전쟁으로 파괴된 철도, 교량 등 핵심 인프라를 재건축하는 데 필요한 연방 재정 지원이 포함되었습니다.

4. 재건 시대의 종식

헤이즈는 또한 재건(Reconstruction)을 신속하게 종식시키는 정책을 약속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남부 주 정부에 대한 연방의 감독을 철회하고, 행정 권한을 지역 당국에 반환하는 방안이었습니다.

타협이 가져온 결과

이러한 일련의 타협적 약속 덕분에 남부 민주당원들은 마침내 러더퍼드 B. 헤이즈의 대통령직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타협은 남부 흑인들을 보호하던 연방의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될 인종 차별과 분리 정책의 길을 열었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