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미군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해방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는 나치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남부(현재의 오시비엥침 인근)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서부에서 진격하던 미군이 아니라, 동부에서 진격해 온 소련 붉은 군대가 이 수용소를 해방했습니다.
소련 붉은 군대에 의한 해방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 도착하여 약 7,000명의 생존 수감자를 발견하고 수용소를 해방했습니다. 해방 직전 나치 친위대(SS)는 대부분의 수감자들을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소위 '죽음의 행진'에 몰아넣었기 때문에, 수용소에는 이미 크게 쇠약해진 소수의 사람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유엔(UN)은 매년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로 지정하여 전 세계적으로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군은 어떤 역할을 했나?
미군을 비롯한 서방 연합군은 독일 본토와 오스트리아 지역의 여러 나치 수용소 해방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부헨발트 수용소 — 1945년 4월 미군이 해방
- 다하우 수용소 — 1945년 4월 미군이 해방
-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 1945년 5월 미군이 해방
즉, 미군도 홀로코스트 현장 목격자이자 구원자였지만, 가장 상징적인 절멸수용소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의 해방은 전적으로 1945년 1월 27일 소련 붉은 군대의 공이며, 미군의 개입은 없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