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디드로의 백과사전: 계몽주의 시대를 연 '지식의 성서'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사전』

디드로의 백과사전: 계몽주의 시대를 연  지식의 성서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와 장 르 롱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가 편찬한 『백과사전』은 총 28권으로 이루어진 대작으로, 1751년부터 1772년까지 약 20년에 걸쳐 출간되었다. 이 사업의 근본 목적은 인류가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을 한데 모으고, 누구나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디드로의 유물론과 기독교 비판은 『백과사전』의 기본 바탕을 이루었고, 이 때문에 왕정과 교회의 적개심을 사게 되었다.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를 비롯한 18세기의 과학자·문인 다수가 이 작업에 동참했으며, 『백과사전』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계몽주의 정신의 확산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철학자들의 세기

18세기 프랑스에서 수많은 작가와 사상가들이 스스로를 '철학자'라 칭했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 같은 이들은 지식의 보급을 통해 무지의 어둠과 싸우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인간은 이성으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지녔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역사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고, 인류의 진보를 굳게 믿었다.

디드로의 백과사전: 계몽주의 시대를 연  지식의 성서 그중 한 사람인 드니 디드로는 당대 가장 과감한 사상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1743년 영어 저작들을 번역하며 문필 활동을 시작했고, 3년 뒤 첫 저서 『철학적 사유(Pensées philosophiques)』를 출간했다. 이어 『눈에 띄지 않는 보석들(Les Bijoux indiscrets, 1748)』과 『눈 먼 자를 위하여 보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Lettre sur les aveugles, 1749)』를 발표했는데, 후자 때문에 빈센느 감옥에 3개월간 유폐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디드로는 언제나 새롭고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를 물색하고 있었다.

1745년, 서적상 르브르통(Le Breton)은 1728년 영국의 에프라임 체임버스(Ephraim Chambers)가 펴낸 과학·예술 삽화 사전 『사이클로피디아(Cyclopedia)』의 번역을 기획한다. 이 아이디어를 디드로에게 제안하자, 그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모든 분야, 모든 시대에 걸친 인간 정신의 노력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담은 독창적인 저작을 만들 것을 역제안했다. 이 거대한 모험에 착수하기 위해 그는 친구인 수학자이자 철학자 달랑베르와 손을 잡았는데, 달랑베르는 당대 유명한 여류문인 탕생 부인(Madame de Tencin)의 사생아였다.

백과사전의 시작

1750년 10월, 디드로는 『예고문(Prospectus)』을 통해 사업 계획을 공표했고, 무려 2,000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그는 1759년까지 달랑베르와 함께 당대 최고의 두뇌들이 동원되는 방대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를 비롯해 뷔퐁, 엘베티우스, 콩디약, 돌바흐, 도방통, 마르몽텔, 케네, 조쿠르, 그림, 튀르고 등이 참여했다. 1751년 7월 1일, 『백과사전, 즉 이성·과학·예술·기예 사전』의 첫 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달랑베르는 '편집자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항목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철학은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밝혔다. "이 저작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백과사전으로서는 가능한 한 인류 지식의 질서와 연결을 최대한 드러내야 하며, 이성적으로 편찬된 과학·예술·기예 사전으로서는 자유학예든 기술이든 모든 학문과 기예의 토대가 되는 일반 원리와, 그 학문의 몸통과 실체를 이루는 가장 본질적인 세부 내용을 담아야 한다."

고된 작업의 나날들

디드로의 백과사전: 계몽주의 시대를 연  지식의 성서 『백과사전』의 성공은 즉각적이었고 판매부수도 해가 거듭할수록 크게 늘었다. 그러나 각 권의 출간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집필자들에게 항목을 의뢰하고 원고를 검토·교정하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을 쏟아야 했을 뿐 아니라, 반(反)철학자들의 공격에도 끊임없이 맞서야 했다. 그 선두에는 경건주의파와 예수회가 있었다. 1752년, 소르본에서 집필자 중 한 명인 프라드 신부(Abbé de Prades)가 제출한 논문이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예수회는 이미 출간된 처음 두 권에 대한 판매·구입·소지 금지 명령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퐁파두르 후작부인과 서적 관리책임자 말레르브(Malesherbes)의 보호 덕분에 출판업자들은 이듬해 출간을 재개할 수 있었다.

1759년에는 결정타가 날아왔다. 국무평의회가 다시 『백과사전』의 판매를 금지하고 구독자들에게 환불을 명령한 것이다. 말레르브가 개입했지만 출판 금지령 자체는 막지 못했다. 결국 달랑베르가 손을 놓았고, 디드로는 홀로 마지막 열 권의 준비 작업을 이어갔으며, 이 책들은 지하에서 은밀하게 인쇄·출간되었다. 마침내 1765년 7월, 본문 17권 가운데 마지막 권이 나왔다(마지막 도판권은 1772년에 출간). 결국 직원 150명과 노동자 1,000명이 본문 17권을 위해 71,818개의 항목을 집필했다. 진정한 베스트셀러였던 초판 『백과사전』은 약 250만 리브르(당시 프랑스 화폐)의 수익을 안겨준 것으로 추산된다.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사전이 남긴 유산

디드로의 백과사전: 계몽주의 시대를 연  지식의 성서 디드로와 동료들의 사업은 이후 백과사전 편찬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오늘날까지 계몽주의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도 가톨릭 진영에서는 이 책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로 그보다 더 방대한 대작들을 내놓았다. 성직자 만능 문고를 설립하고 그리스 교부학·라틴 교부학이라는 방대한 텍스트 집성을 출간한 자크 폴 미뉴 신부(Jacques-Paul Migne, 1800~1875)는 1851년부터 1859년까지 66권짜리 『교회 백과사전』을 펴내,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재앙 같은' 백과사전을 '과학과 실용의 난쟁이'로 격하시키고자 했다.

디드로 저작의 유산에는 또 다른 면모도 있다. 계몽주의 철학과 프랑스 혁명의 계승자인 독일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과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가 만든 『철학강요(Encyclopedia of the Philosophical Sciences, 1817)』가 그것이다. 지식의 종합이자 철학적 지식의 총괄인 디드로의 백과사전은 논쟁적인 기만인지, 단순한 목록인지, 아니면 위대한 사업인지 평가가 분분하지만, 어느 쪽이든 유일무이한 저작임만은 분명하다.

더 읽을 거리

  • 자크 프루스트(Jacques Proust), 『디드로와 백과사전』, Albin Michel, 1995년 10월.
  • 『디드로·달랑베르의 백과사전과 18세기의 백과사전적 기획』, Éditions L'Harmattan, 2018.
  • 피에르 이브 보려페르(Pierre-Yves Beaurepaire),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1715~1789』, Belin, 201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