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음주 선장이 빚은 재앙: 2004년 함부르크 항 산성 유조선 'ENA 2' 전복 사고의 전말

2004년 6월 28일 저녁, 함부르크 항에서 평범한 이동 항해가 시작됐습니다. 산성 운반선 'ENA 2'호(62m)는 퓌테하펜(Peutehafen)에서 석유항으로 향하는 30분 여정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북독일 제련소(Norddeutsche Affinerie, NA) 소유인 이 배에는 고농도 황산 960t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유로카이(Eurokai)를 출발해 북해로 향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푸동 세너터(Pudong Senator)'호(294m)와 항로가 교차하면서 두 척은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ENA 2'호, 부두에서 전복되다

충돌 직후 'ENA 2'호의 승무원 2명은 손상된 선박을 간신히 석유항 부두까지 이동시켜 정박시켰습니다. 그러나 선체 손상 부위로 물이 스며들어 선체와 탱크 사이 공간에 고이기 시작했고, 결국 산적 화물선은 복원력을 잃고 부두 옆에서 전복되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마이크 K.(Mike K.) 선장은 심각한 만취 상태였고, 혈중 알코올 농도는 무려 2.1‰에 달했습니다.

산성 연기, 작업자 11명 화학 화상

294m 길이의 거대 컨테이너선은 별다른 손상 없이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ENA 2'호는 석유항에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손상된 탱크에서 새어 나온 황산 증기는 부두 작업자 9명과 경찰관 2명에게 화학 화상과 호흡기 자극을 일으켰습니다. 다행히 주요 탱크 4개는 손상되지 않았지만, 황산은 환기관을 통해 하천수로 흘러든 뒤 증기 형태로 대기 중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소방대는 항만 수역에 지속적으로 물을 살포했고, 조난 선박 주변에는 공기·오일 차단막을 설치해 확산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 날 아침, 수천 마리의 물고기 사체가 수면에 떠올랐습니다.

폭발 위험 속의 곤란한 구조 작업

황산 증기 발생을 막기 위해 소방대는 난파선에 끊임없이 물을 뿌렸습니다. 6월 29일에는 브레머하펜에서 부유식 크레인 '에낙(Enak)'호가 도착해 난파선을 안정시키고 최종적으로 바로세우기 작업에 나섰습니다. 잠수부들은 이미 선체를 고정하고 인양용 로프를 부착한 상태였습니다. 구조대는 선체 회전 과정에서 배가 부서질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가장 큰 위협은 적재된 화학물질 자체였습니다. 황산이 물과 섞이면 부식성이 극심한 반응과 함께 폭발성 수소 가스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우려는 이후 작업에서 실제로 확인됐습니다. 여기에 연료탱크에 남아 있던 디젤 3t까지 누출되거나 화학물질과 반응할 위험이 더해졌습니다.

수중에서 진행된 정밀 준비 작업

사고 5일째에야 구조대는 'ENA 2'호를 다시 떠 있는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잠수부들은 두 개의 전방 탱크에 고인 폭발성 수소 가스 혼합물을 불연성 질소로 치환해야 했습니다. 수중에서는 작은 불꽃 하나로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4일 뒤 두 번째 해상 크레인이 도착했습니다. 치밀한 준비 끝에 두 크레인은 7월 3일, 전복됐던 유조선을 센티미터 단위의 정밀 작업으로 다시 수상 복원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방대·경찰·특수구조대 등 900여 명의 인력이 5일간의 구조 작업에 동원됐습니다.

황산 96만 리터, 엘베강으로

사고로 인해 적재량 전체인 약 96만 리터의 황산이 엘베강으로 유입됐습니다. 그럼에도 함부르크 내무당국은 사고 직후 엘베강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수준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NA의 베르너 마르네트(Werner Marnette) CEO 역시 "이번 사고를 환경 재앙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면서도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환경당국에 따르면 황산은 엘베강의 막대한 물량에 희석되면서 사고 직후 짧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석유항 밖에서 더 이상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린피스 대변인 크리스티안 부사우(Christian Bussau) 역시 항구 외부의 피해는 미미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석유항은 어차피 이미 생물학적으로 죽은 수역"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습니다.

선장이 인정한 '위스키 한잔'

2006년 1월, 이 사건은 함부르크 지방법원에 회부됐습니다. 검찰은 마이크 K. 선장을 해운 및 수질 오염 위험 혐의로 기소하고 징역 1년 4개월을 구형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만취 상태의 선장은 통행 우선권 규정을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마이크 K.는 사고 전에 맥주와 위스키를 마셨다고 인정했으며, 사고 이전부터 알코올 문제로 지목된 인물이었습니다. 사고 당일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거의 2.2‰에 달했습니다. 결국 당시 38세였던 그는 법원 절차와 별개로 평생 선장 면허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마이크 K.는 충돌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고, 변호인 측은 컨테이너선이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속으로 항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판결: 집행유예 1년

사고 1년 6개월 뒤인 2006년 2월 2일, 법원은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ENA 2'호 선장은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관련된 모든 사람이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고 판시했습니다. '푸동 세너터'호 선장과 항구 도선사 역시 함부르크 항의 관행에 따라 "작은 배가 큰 배에게 길을 양보한다"고 가정했던 것입니다.

한자 도시가 요구한 '선상 절대 금주'

한편 이 사고는 항해 중 음주 규제 강화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함부르크(한자 도시)는 연방 정부에 항해 중 혈중 알코올 농도 0‰을 목표로 하는 규제를 요청해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05년 8월부터 선장의 허용 혈중 알코올 농도는 기존 0.8‰에서 0.5‰로 낮아졌습니다. 나아가 위험물 운송 분야에서는 향후 사실상 무알코올 규정이 적용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