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Susanne Abolins-Aufderheide
다게뷜(Dagebüll) 항에서는 푀르(Föhr) 섬과 암룸(Amrum) 섬으로 향하는 페리 운항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다 도와야 했습니다. 그러자 고등학생들이 달려나가 모래주머니를 가득 채웠습니다." 당시의 격전을 이렇게 회상하는 이는 빌헬름 엘러만(Wilhelm Ellermann)입니다.
1981년 11월, 북프리슬란트(Nordfriesland) 주민들이 '블랑케 한스(Blanke Hans)'라 부르는 거친 북해가 폭풍과 함께 푀르 섬의 제방을 강타했습니다. 자원소방대원들이 본토에 머물러 있었던 터라 섬 사람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방어에 나서야 했습니다. 최고 시속 150km에 달하는 강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화가 엘러만은 자연이 펼친 광경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그는 전합니다.
182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위
평시 조위보다 3.45m 높은 수위가 관측되었는데, 이는 150여 년 만에, 즉 1825년 이후 처음 기록된 최고치였습니다. 다행히 제방은 끝까지 버텨냈고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11월 24일에 발생한 이 폭풍 해일은 독일과 덴마크 북해 연안 곳곳에 큰 피해를 남겼지만, 피해액이 수억 마르크에 달했던 1976년 대홍수만큼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덴마크의 뢰뫼(Rømø) 섬과 만되(Mandø) 섬에서는 제방이 붕괴했고, 실트(Sylt) 섬 역시 제방이 무너지고 힌덴부르크댐(Hindenburgdamm)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으며, 서해안 전역에서 인공 사구가 유실되었습니다.
제방 보호에 연간 5천만 유로 투입
푀르(Föhr) 섬의 항공 전망. 북서쪽으로 실트(Sylt) 섬이 보인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주는 매년 제방 보호에 5천만 유로 이상을 투자하며, 여기에 더해 제방 보강과 실트 섬 앞바다 모래 보충 같은 해안 보호 사업에 3천만 유로가 별도로 투입됩니다. 지난 3년간 지구 기후 변화에 대응해 연안 제방을 50cm 높였는데, 이는 2100년까지 예상되는 18~59cm의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폭풍 해일이 특히 잦은 시기는 1월과 2월로, 풍력 10을 넘는 강한 서풍과 깊은 저기압이 겹치면 북해 연안에 폭풍 해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대 9m 높이의 함부르크 홍수 방지 시스템
함부르크 그로세 엘브슈트라세(Grosse Elbstrasse) 일대의 침수 장면.
북서풍이 끊임없이 바다를 밀어올려 썰물 때조차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함부르크의 상황은 급격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다음 밀물이 앞선 해일 위에 그대로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1962년 폭풍 해일 당시 독일 북해 연안과 베저강·엘베강 하류에서 총 34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 가운데 315명이 함부르크에서 희생되었습니다. 현재 함부르크 홍수 방지 시설의 높이는 7.60~9m에 이르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서해안의 제방 역시 최대 8.80m까지 설계되어 있습니다. 한편 발트해 연안은 폭풍 해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