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스나브뤼크(Osnabrück)의 가족 기업 카르만(Karmann)은 단 한 대의 차, '카르만 기아(Karmann Ghia)'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차는 결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카르만의 시대는 2009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핵심은 어디까지나 '비틀', 그럼에도 컬트가 된 쿠페
본질적으로 비틀(Beetle)입니다. 유선형으로 낮춰 보였을 뿐, 뼈대는 여전히 비틀이었습니다. 최상위 모델조차 최대 출력이 50마력에 불과해 가장 숙련된 운전자라도 시속 160km를 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팬들은 카르만 기아를 '스포츠카'라 부릅니다. 생산이 중단된 지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 프랑스, 미국의 팬 클럽과 정기 모임, 온라인 포럼에서는 기아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고 둥근 쿠페는 이제 완연한 컬트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독일-이탈리아 동맹, 비틀 기반 컬트 쿠페의 탄생
1955년 게오르크스마리엔휘테(Georgsmarienhütte)에서 열린 카르만 기아 발표회. 디자이너 루이지 세그레(Luigi Segre, 왼쪽)와 빌헬름 카르만(Wilhelm Karmann).
카르만 기아는 오스나브뤼크의 자동차 전문가들이 자사의 이름을 걸고 만든 유일한 자동차입니다. 빌헬름 카르만이 아버지로부터 오스나브뤼크 차체 공장을 물려받은 지 1년 후인 1953년, 카르만 가문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기아(Ghia) 스타일링 스튜디오와 함께 비틀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 스포츠카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약 2년 뒤 양산이 시작되었고, 2인승 쿠페의 출고가는 7,500마르크였습니다.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카르만은 36만 대 이상의 기아 쿠페를 생산했습니다.
부의 상징, 시선을 사로잡는 '오픈카'
기아는 단순하고 둥글며 우아합니다. 기아 카브리올레는 1957년부터 생산되어 총 약 8만 대가 만들어졌습니다. VW를 바탕에 두고 이탈리안 디자인을 입은 이 모델이 세계 도로에서 이름을 알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경제 성장의 상징이자 전후 시대의 염원이 응축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여성들과 광고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받다
기아는 자주 영화 속 배경이 되었습니다. 1964년 작 'Wilhelmsburger Freitag'의 한 장면.
30마력에 불과한 낮은 출력에도 불구하고 기아는 우아함의 대명사로 통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이 차를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집니다.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 페트라 슈어만(Petra Schürmann) 같은 당대의 영화배우들이 기아의 핸들을 잡았으며, 수많은 광고 사진과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기아는 시선을 붙잡는 차량으로 등장했습니다.
목재 차체부터 전쟁 폐허, 대중의 컨버터블까지
창업 초기에는 이러한 화려함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카르만의 전신은 크리스티안 클라게스(Christian Klages)라는 이름의 마차 공장이었습니다. 1901년 빌헬름 카르만이 오스나브뤼크의 이 회사를 인수했고, 1년 뒤 첫 번째 목재 차체를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1913년에는 최초의 접이식 지붕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카르만 가문은 폐허가 된 작업장 앞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1949년 빌헬름 카르만은 배급표로 VW 비틀 한 대를 구입해 아들(역시 빌헬름이라는 이름)과 함께 4인승 컨버터블을 만들었고, 이것이 전후 호황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지붕 없이 맞춰진 비틀이 볼프스부르크의 VW에 도착하자 VW는 즉시 1,000대를 주문했습니다. 카르만은 1980년대까지 대중용 컨버터블을 생산해 총 33만 2,000대 이상을 판매했습니다.
스포츠 쿠페와 컨버터블의 명가로
1950년대 카브리올레와 스포츠 쿠페는 서부 니더작센 지역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특산품이 되었습니다. 컬트적 지위에 오른 것은 카르만 기아만이 아니었지만, 카르만의 '오픈탑' 모델은 특별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2009년 회사가 파산할 때까지 거의 모든 주요 완성차 업체가 이 오스나브뤼크 기업의 고객이었습니다. 소량 생산 주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골프 컨버터블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컨버터블이었습니다.
소프트톱, 스틸 차체, 나아가 설계 단계부터 최종 납품에 이르는 전 과정까지—신차를 기획하는 대형 완성차 업체들은 종종 카르만에 눈을 돌렸습니다. 다만 업체들은 자사의 이름을 내세우는 쪽을 택했고, 카르만은 완성차를 직접 개발·생산하면서도 스스로를 겸손하게 '공급업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아우디 컨버터블, 메르세데스 CLK, 골프 컨버터블을 몰던 사람 중 자신이 사실상 카르만이 만든 차를 운전하고 있음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2009년 여름, 한 시대의 끝
검정색 메르세데스 CLK 컨버터블은 조립 라인을 빠져나온 마지막 차량이었습니다.
2009년형 검정색 메르세데스 CLK는 카르만이 1949년부터 이어온 '오픈카' 계보의 마지막 모델이었습니다. CLK 컨버터블만 약 22만 5,000대가 인도되었으며, 오스나브뤼크에서 생산된 차량은 모두 330만 대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독립 완성차 제조업체로서 카르만의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 2009년 6월 22일, 마지막 컨버터블이 조립 라인을 떠났습니다. 파산한 회사는 오랫동안 신규 주문을 찾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전략 변화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회사는 2010년 결국 해산되었고, 4,247명의 직원 중 많은 수가 해고되었습니다.
VW가 회사의 남은 유산을 인수하다
2011년부터 전직 카르만 직원들은 오스나브뤼크의 VW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0년 말 폭스바겐(VW)은 카르만의 기술개발 부문을 인수했습니다. 루프(차량 지붕) 부문은 여러 곳에 매각되었습니다. 마그나(Magna)는 일본 공장을, 웹아스토 에드샤(Webasto Edscha)는 멕시코·북미 공장을, 핀란드 완성차 업체 발메트(Valmet)는 오스나브뤼크와 폴란드의 생산 시설을 각각 인수했습니다. 2011년 3월, VW는 특허와 상표권을 포함한 회사의 나머지 자산과 직원들을 확보하며 차량 생산을 재개했습니다. 전직 카르만 직원들은 이후 2016년까지 VW용 골프 카브리올레를 생산했습니다.
현재 오스나브뤼크 공장에서는 약 2,300명의 직원이 기술개발과 차량 생산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는 T-Roc 컨버터블이 생산 중이며, ID 전기차 라인업을 위한 버스도 개발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