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함부르크와 로스토크에서 벌어진 NSU 연쇄살인: 수사 실패와 진상 추적

함부르크와 로스토크에서 발생한 NSU 연쇄살인 사건

작성: Oliver Diedrich, NDR.de

수년 동안 경찰은 독일 전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살인 사건 앞에서 방향을 잃고 있었습니다. 수사관들은 보호 라켓이나 마약 거래를 배경으로 추정했고, 때로는 '명예 살인'설까지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 11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2000년부터 2006년 사이에 저질러진 이 범죄들은 명백히 우익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었던 것입니다. NSU(National Socialist Underground, 국가사회주의 지하조직) 갱단은 이민자 살해 외에도 경찰관 살해, 폭탄 테러, 은행 강도 등 더욱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함부르크와 로스토크 역시 이민자 살해 현장이었습니다.

함부르크: 쥘레이만 태스쾨프뤼의 근거리 사살

2001년 6월 27일 수요일, 쥘레이만 태스쾨프뤼(Süleyman Tasköprü)는 함부르크 바렌펠트 지구에 있는 아버지의 야채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 사이 슈츠엔슈트라세(Schützenstraße)의 매장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금까지도 미궁에 싸여 있습니다.

아버지 알리(Ali)는 당시 31세였던 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심각한 머리 부상을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급파된 응급 의료진도 이미 그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부검 결과, 태스쾨프뤼는 근거리에서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머리에는 치명적인 손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사건 직전 가게 앞 보도를 두 남자가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손님으로 여겼지만, 나중에야 자신이 가해자를 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두 남자를 독일인으로, 날씬한 체격에 나이는 25~30세 정도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보만으로 신원을 특정하기에는 부족했고, 경찰은 더 이상 흔적을 좇지 못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년 후, 경찰은 목격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신원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태스쾨프뤼가 동일한 무기로 살해된 9명(터키계 소규모 상인 8명과 그리스인 1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져 있었지만, 경찰의 수사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로스토크: 25세 메메트 투르구트 살해 사건

로스토크에서 가해자들은 25세의 도너 케밥 판매원에게 총구를 겨눴습니다.

2004년 2월 25일 재의 수요일, 메메트 투르구트(Mehmet Turgut)는 로스토크 토이텐빙켈(Toitenwinkel) 지구의 도너 케밥 가게에서 임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로스토크에 온 지 불과 열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침 매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오늘날까지도 불분명합니다. 가해자들은 오전 10시경 매장에 들어와 피해자에게 여러 발의 총탄을 발사했습니다. 투르구트는 얼마 후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25세 남성이 머리와 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지만, 수사에 지장을 줄까 우려하여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메메트 투르구트의 살해는 언론에서 '케밥 살인(Kebab-Morde)'으로 보도된 일련의 범죄 중 하나였으며, 함부르크 출신 쥘레이만 태스쾨프뤼 역시 같은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훗날에야 알려졌습니다. 살인 무기는 매번 동일했습니다. 바로 체스카(Ceska) 83식, 구경 7.65mm 권총이었습니다.

수사 당국의 중대한 실수?

연쇄 살인 사건의 9명 피해자는 모두 같은 무기로 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NSU가 츠비카우(Zwickau)에서 폭로된 후에야 체스카 권총을 확보했습니다.

2013년 5월, 뮌헨에서 NSU 회원 및 지원 혐의자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공동 원고로 참여한 피해자 유족 측 변호인단은 처음부터 수사 당국이 수년간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연방하원과 여러 주 의회 조사위원회의 결과로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주범 우베 뵌하르트(Uwe Böhnhardt)와 우베 문들로스(Uwe Mundlos)와 함께 살았던 베아테 츠셰페(Beate Zschäpe)는 2년 반의 재판 끝에 2015년 12월 9일 처음으로 침묵을 깼습니다. 재판 기간 내내 그녀는 변호인에게 진술서를 읽게 했습니다. 진술서에서 그녀는 범죄에 대한 직접적인 연루를 부인하며, 나중에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그녀는 책임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10건의 살인과 2건의 폭탄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죄책감을 느낍니다." 뵌하르트와 문들로스는 2011년 11월 은행 강도 후 도주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끝냈습니다. 2018년 7월, 베아테 츠셰페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