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힘겨웠던 인질 억류의 끝이 밝아왔다. 2000년 7월, 괴팅엔 출신 르네이트 발러트가 석방되었고, 같은 해 8월 27일에는 남편 베르너도 자유를 되찾았다. 하지만 아들 마르크는 아직 풀려나지 못한 채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당시의 기억을 조용히 되새겨본다.
발러트 가족 납치 사건
괴팅엔에 사는 발러트 가족은 2000년 4월 23일 부활절 일요일, 인질로 잡혔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아부 사야프가 말레이시아 시파단 섬의 관광객들을 습격해 필리핀 남부의 홀로 섬으로 끌고 간 것이다. 희생자 중에는 르네이트와 베르너 발러트 부부, 그리고 아들 마르크까지 세 식구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아들은 9월까지 계속 억류당하다
가족은 점차 흩어졌다. 2000년 7월 어머니 르네이트가 먼저 석방되었고, 8월 27일에는 아버지 베르너도 풀려났다. 리비아가 몸값 500만 달러를 지급하면서 베르너와 다른 네 명의 인질은 억류 생활을 끝냈다. 그러나 아들 마르크 발러트는 9월 9일까지 끝내 석방되지 못했다.
NDR 니더작센 방송국은 납치 사건 20주년을 맞은 2020년 4월, 마르크 발러트를 만나 억류 시절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경험 없이 살았더라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마르크 발러트는 숲속 벤치에 앉아 있다. 그의 소지품 중 거의 유일한 '납치 기념품'인 모기 기피제 통을 열고 깊게 숨을 들이쉰다. 당시 정글을 연상시키던 바로 그 냄새다. "지금은 냄새가 나질 않네요. 20년 전처럼요." 냄새는 사라졌지만, 인질로 지냈던 극적인 나날들의 기억은 여전히 그 안에 산다.
46세의 그는 지금은 평온하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납치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경험은 그를 변화시켰고,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겪으라고 권하고 싶진 않지만, 제 인생에서 없었다면 오히려 아쉬울 것 같습니다"라고 발러트는 말했다.
무장 세력이 납치한 인질 21명
2000년 부활절 일요일. 다이빙 휴가를 즐기러 온 마르크 발러트는 말레이시아 시파단 섬 호텔 테라스에서 칵테일을 한 손에 든 채 그림 같은 노을을 감상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바주카포의 총구를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강도를 만난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이후 20시간에 걸친 보트 항해가 공해 위에서 이어졌고, 도착 후에는 정글을 10시간 동안 험하게 행군해야 했다. 테러리스트들이 필리핀 영토로 끌고 간 인질은 모두 21명이었다.
불확실성에 지쳐가는 인질들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로 마르크 발러트와 다른 인질들은 첫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앞으로 대부분 예고 없이 수용소를 여섯 번이나 옮겨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필리핀 군대의 추격을 피해 반군과 인질들은 반복해서 피난을 거듭했다.
나날이 쌓이고 주가 지나며 달이 흘렀다. 납치범들은 인질들이 곧 풀려날 것이라고 거듭 말했지만, 그 불확실성이 인질들을 갉아먹었다. "2년 뒤에 확실히 석방된다고 보장받는 편이, 2일 뒤에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라고 마르크 발러트는 돌아보며 털어놓았다.
거의 매일 찾아오던 취재진
인질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 살았다. 독성 있는 동물들과 한집바람에 지내고, 프라이버시라고는 한 조각도 없이 늘 무장한 반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기괴한 점은 납치범들이 거의 매일 카메라팀의 방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군들은 총을 들고 기자들 앞에 대담하게 포즈를 취했고, 인질들은 감정이 절절한 구조 요청을 보내왔다. 이 영상들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마르크 발러트는 언론의 관심이 교섭에는 분명 도움이 됐다고 믿지만, 카메라가 항상 곁에 있는 상황은 마치 동물원에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고 오늘날 털어놓는다. 납치가 길어질수록 인질들은 특권을 하나씩 얻어갔다. 기자들과 전강인들이 정글로 꾸준히 소포를 들여왔다. 때로는 펜과 종이가, 때로는 약과 간식이 담겨 있었다.
인질 대부분은 일기를 썼고, 마르크 발러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일기 쓰기가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어떤 날은 노트에 40페이지씩 써 내려가기도 했다.
약 3개월 만에 첫 번째 석방
마르크 발러트는 원래의 쌀 자루 두 개를 펼치며 그것이 어떻게 배낭으로 변신하는지 직접 시연한다. "특히 긴 행군 때는 금값보다 귀했습니다." 쌀 자루 덕분에 인질들은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튼튼한 자루가 아니었다면 그의 일기장들이 정글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당시 샌들, 개봉하지 않은 정어리 통조림, 그리고 진흙 면도컵까지 그의 정글 컬렉션을 완성한다.
"독일에서 누군가 저 진흙컵을 보내줬어요. 정글에서 면도 크림을 만들라고요. 실용적인 효용은 전무했지만, 심리적으로는 엄청난 위로가 됐습니다"라고 발러트는 말한다. 바로 이런 작은 배려들이 괴팅엔 출신 그를 비롯한 포로들에게 거듭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첫 인질이 석방되기까지 거의 3개월이 걸렸다. 마르크 발러트의 부모는 이미 자유의 몸이 된 반면, 아들은 계속 걱정 속에 억류되어 있어야 했다. 결국 140일의 억류 끝에 그는 9월 9일, 마지막 인질들 중 하나로서 마침내 석방되었다.
발러트 납치 사건 연대기
부활절 일요일, 2000년 4월 23일:
7개국 국적의 휴가객 21명, 그중 괴팅엔 발러트 가족 3명을 포함해 말레이시아 시파단 섬의 다이빙 리조트에서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조직 아부 사야프에게 납치당했다. 무장한 반군들은 인질들을 두 척의 배에 태웠고, 공해를 건너는 항해는 20시간에 달했다. 목적지는 홀로 섬의 필리핀 정글. 10시간의 도보 행군 끝에 인질들은 첫 수용소에 도착했다. 화장실도 침대도 없었고, 처음 몇 주간은 대체로 쌀밖에 먹을 것이 없었다.
4월 29일:
첫 취재팀이 수용소를 찾아 납치 사건을 보도했다. 이후에도 기자들이 수시로 수용소를 찾았고, 납치범들은 필리핀 내 독립 이슬람 국가 건설을 공공연히 요구했다. 이 인질극은 수개월간 국제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수용소는 필리핀 군의 포격을 두 차례 받기도 했다. 납치 기간 동안 인질들은 수용소를 여섯 번 옮겨야 했다.
7월 17일:
괴팅엔 출신 르네이트 발러트가 최초의 독일인 인질로 석방되었다. 억류 기간 동안 그녀는 여러 차례 의료 처치를 받아야 했고, 여러 번 쓰러지기도 했다. 이후 점차 더 많은 인질들이 풀려났다.
8월 27일:
르네이트 발러트의 남편 베르너 발러트가 석방되어 괴팅엔으로 돌아갔다. 다른 인질들 역시 상태가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공책, 신발, 의류 등 구호 물품이 담긴 소포들이 계속 도착했고, 독일군(분데스바이어)도 함버거 등 전투식량을 정글로 보내기 시작했다.
9월 9일:
140일의 억류 끝에 마지막 인질들이 석방되었고, 괴팅엔 출신 마르크 발러트도 그중 하나였다. 3일 뒤 그는 하노버 공항에서 부모님의 품에 안겼다. 몸값의 정확한 액수에 대한 공식 정보는 없지만, 총 2천500만 달러가 지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독일 정치인들은 세부 사항에 대해 입을 닫았으나, 석방은 전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모든 인질은 목숨을 건졌다.
5년 후, 또 다른 위기: 번아웃
마르크 발러트는 자신이 말하는 '두 번째 인생'으로 당차게 복귀했다. 그러나 5년 뒤 그는 직장에서 우울증에 빠진다. 진단명은 번아웃이었다. 그 역시 이 위기를 극복했다. 이제 47세가 된 그는 코치이자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위기에 놓인 사람들과 기업들을 코칭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납치 경험과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며,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그렇다고 말한다. "불안정한 상황이고,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최근 출간된 그의 책 『위기에서 강해지다』는 단순한 납치 사건 연대기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직업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처럼 읽힌다. 마르크 발러트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로 보이길 원한다. 그래서 그는 개인적인 정글 컬렉션을 서둘러 가방에 다시 쏙 넣는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때만, 그것을 다시 꺼내 보일 것이다.